싱가포르는 흔히 ‘작고 효율적인 도시국가’로 설명된다. 공항에서 도심까지의 거리, 정돈된 거리 풍경, 영어로 소통되는 사회 구조. 이런 요소들만 놓고 보면, 싱가포르는 어쩌면 다소 무미건조한 도시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발걸음을 옮기면, 이 도시는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아랍 스트리트, 그리고 과거의 이름으로 불리는 캄퐁 글램(Kampong Glam)이다.


다민족 국가 싱가포르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
싱가포르는 중국계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지만, 이 도시는 단순한 ‘중국 문화권의 도시’로 규정할 수 없다. 말레이계, 인도계, 아랍계 문화가 제도적으로 공존하고 있으며, 종교·언어·생활양식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아랍 스트리트는 그중에서도 이슬람 문화와 말레이·아랍 상인의 역사가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구역이다.
부기스에서 한 블록 정도만 걸어오면,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진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언어가 바뀌고, 건물의 색감과 장식이 달라지며, 히잡을 쓴 여성과 전통 모자를 쓴 남성들이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온다. 싱가포르라는 도시 안에 있지만, 마치 다른 나라의 구역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아랍 스트리트’의 본래 이름, 캄퐁 글램
현재는 아랍 스트리트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지만, 이 지역의 본래 이름은 캄퐁 글램이다. 말레이어로 ‘캄퐁(Kampong)’은 마을이나 어촌을 의미하고, ‘글램(Glam)’은 이 지역에 자생하던 나무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1822년, 싱가포르를 식민지로 정비하던 스탬포드 래플즈경는 이 지역을 말레이 술탄과 무슬림 공동체에 배정했다. 당시 술탄 후세인 모하메드 사아와 함께 아랍 상인, 부기스 상인, 말레이 무슬림들이 이곳에 정착하게 되면서, 캄퐁 글램은 자연스럽게 이슬람 문화권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즉, 이곳은 단순히 ‘외국 문화가 모여 있는 관광지’가 아니라, 싱가포르라는 도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제도적으로 보장된 문화 구역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아랍 스트리트의 중심, 술탄 모스크
아랍 스트리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건 단연 술탄 모스크(Sultan Mosque)다. 황금빛 돔과 대칭 구조의 외관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며, 이 지역의 중심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술탄 모스크는 1824년, 술탄 후세인을 위해 처음 건립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 보수와 재건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20세기 초에 완성된 형태로, 싱가포르에서 가장 상징적인 이슬람 사원 중 하나로 꼽힌다.
이곳은 관광객에게도 개방되어 있다. 다만 예배 시간에는 출입이 제한되며, 복장 규정이 엄격하다. 특히 여성의 경우 짧은 치마나 노출이 있는 옷차림으로는 입장이 불가능하지만, 입구에서 긴 치마와 가운을 무료로 대여해주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다. 이러한 절차 역시, 이 공간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현재도 살아 있는 종교 공간임을 보여준다.


거리에서 체감하는 이슬람 문화
모스크 주변 골목으로 들어서면, 아랍 스트리트 특유의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향신료 가게, 이슬람 음식점, 전통 의상과 히잡을 판매하는 상점, 그리고 원단 전문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특히 이 지역은 예로부터 섬유와 직물 상업이 발달했던 곳으로, 지금도 다양한 패턴과 색감의 원단을 취급하는 가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음식점 역시 이슬람 문화권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할랄 인증을 받은 식당이 많고, 중동식 요리부터 말레이 전통 음식까지 폭넓게 분포해 있다. 혼자 여행 중이 아니었다면, 이곳에서 식사를 계획했을 법도 하지만, 이날은 체력과 카메라 배터리의 한계로 인해 골목 탐방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아랍 스트리트의 또 다른 얼굴, 하지 레인
아랍 스트리트에서 몇 걸음만 옮기면, 분위기는 다시 한 번 바뀐다. 비교적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한 골목, 하지 레인(Haji Lane)이다. 이곳은 약 200미터 남짓한 짧은 골목이지만, 싱가포르의 젊은 문화가 응축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 레인은 한때 평범한 뒷골목에 불과했지만, 개성 있는 소규모 상점과 카페, 스트리트 아트가 들어서면서 빠르게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벽마다 그려진 그래피티와 벽화는 이 골목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사진을 찍는 여행자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다만, 하지 레인은 오전보다는 오후 이후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가게가 늦게 문을 열기 때문에, 이른 시간에는 다소 한산한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싱가포르라는 도시를 이해하게 만드는 거리
아랍 스트리트와 캄퐁 글램은 싱가포르 여행에서 꼭 들러야 할 ‘명소’라기보다는, 이 도시가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에 가깝다. 싱가포르는 단일 문화를 강요하지 않았고, 각 공동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구역을 제도적으로 남겨두었다. 아랍 스트리트는 그 결과물이다.
부기스의 트렌디한 쇼핑 거리에서 출발해, 이국적인 아랍 스트리트로 이어지는 동선은 싱가포르라는 도시를 가장 압축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루트이기도 하다. 작은 도시 안에 이렇게 다른 문화권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다는 점이, 싱가포르를 특별하게 만든다.
이 거리를 걷고 나면, 싱가포르는 더 이상 ‘깨끗한 도시’나 ‘효율적인 나라’라는 말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아랍 스트리트는 싱가포르가 다양성을 관리하는 방식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
🕌 장소명 싱가포르 아랍 스트리트 (Kampong Glam)
- 📍 위치 Bugis 인근, Central Singapore
- ⭐ 주요 포인트 술탄 모스크 / 아랍 스트리트 / 하지 레인
- 🕒 추천 방문 시간 오후 ~ 저녁 (하지 레인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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