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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을 나서는 날의 공기 — 2022 고려대학교 겨울 졸업식 풍경

우연히 방문한 학교에서 졸업식을 마주치는 경험은 생각보다 인상이 오래 남는다. 목적을 가지고 찾아간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정 행사를 보러 간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일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근처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기 전에 잠깐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들렀던 곳이 고려대학교였다.

김희수아트센터에서 미팅을 마치고 나오니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다. 그대로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기도 그렇고, 바로 근처에 학교가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고려대학교는 이름은 익숙하지만 의외로 자주 가게 되는 장소는 아니다. 안암이라는 위치 자체가 일부러 목적을 만들지 않으면 쉽게 들를 일이 없는 동네이기도 하다.

그렇게 가볍게 발걸음을 옮겨 캠퍼스 안으로 들어갔는데, 정문을 지나 본관 쪽으로 향하는 순간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많았다. 그것도 학생들만 많은 것이 아니라 가족 단위 방문객, 꽃다발을 든 사람들, 정장을 입은 어른들까지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학사복이 있었다. 그날은 고려대학교의 정규 학위수여식, 이른바 겨울 졸업식이 진행되던 날이었다.


안암동, 의외로 ‘학교가 중심인 동네’

고려대학교는 흔히 서울대, 연세대와 함께 ‘SKY’로 묶여 이야기되는 학교다. 인지도만 보면 서울 중심 어딘가에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성북구 안암동이라는 비교적 조용한 동네에 자리 잡고 있다. 번화가와 거리가 있는 대신, 동네 자체가 학교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구조에 가깝다.

지하철 6호선 안암역과 고려대역 사이 어디에서 내려도 정문까지는 애매하게 걸어야 한다. 아주 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바로 앞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인지 학교로 향하는 길에는 자연스럽게 학생들이 만든 생활권이 형성되어 있다. 작은 식당, 복사집, 서점, 카페들이 이어지고, 그 사이를 지나면 갑자기 시야가 열리며 캠퍼스가 등장한다.

정문에서 본관을 향해 올라가는 길은 고려대학교를 상징하는 장면에 가깝다. 붉은 벽돌 건물과 완만한 경사, 그리고 중앙에 놓인 잔디와 계단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으로 많이 보던 풍경인데 실제로 마주하면 생각보다 더 ‘학교다운’ 분위기가 강하다. 화려하다기보다는 묵직한 느낌이다.


오래된 대학의 시간감

고려대학교의 시작은 1905년 보성전문학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1946년에 종합대학교로 승격되며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캠퍼스를 걷다 보면 단순히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 ‘시간이 축적된 공간’이라는 인상이 든다.

최근 지어진 대학 건물들은 대체로 현대식 유리 건물과 비슷한 형태를 띠는데, 이곳은 다르다. 붉은 벽돌 건물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고, 건물 사이 간격과 동선도 효율보다는 전통적인 캠퍼스 구조에 가깝다. 넓고 반듯하게 설계된 공간이 아니라, 걸어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방향을 바꾸게 되는 동선이다.

그래서 캠퍼스를 걷다 보면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는 느낌보다 산책을 하는 느낌이 강해진다. 건물을 보기 위해 걷는다기보다 공간을 느끼며 이동하게 된다. 아마 졸업식이라는 날의 성격과도 잘 맞는 구조였던 것 같다.


겨울 졸업식의 풍경

본관 근처에 다다르자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학사복과 학사모를 쓴 졸업생들이 곳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혼자 사진을 찍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가족과 함께였다. 부모님이 꽃다발을 건네고, 친구들이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며 서로를 찍어주는 장면들이 계속 이어졌다.

계절은 겨울이 끝나가던 초봄이었다. 아직 공기가 차가웠고, 학사복 아래로 코트와 목도리가 그대로 보였다. 두꺼운 외투 위에 학사복을 걸친 모습이 오히려 더 현실적인 장면처럼 느껴졌다. 드라마 속 졸업식과 달리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가 아니라, 조금은 쌀쌀한 날씨 속에서 진행되는 행사였다.

그래서인지 표정도 단순히 들떠 있기만 하지는 않았다. 웃고 있지만 동시에 긴장감이 묻어 있는 얼굴들이 많았다. 학생이라는 신분이 끝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시점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가족들은 사진을 찍으며 축하했고, 졸업생들은 웃으면서도 어딘가 생각이 많아 보였다.

연인끼리 사진을 찍는 모습도 많았다. 꽃다발을 들고 손을 잡고 걷거나, 계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들이 이어졌다. 특정 이벤트라기보다 하나의 전환점에 가까운 날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우연히 마주친 장면이 남기는 기억

이 학교의 학생도 아니고, 특별히 관련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날의 분위기는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아마도 준비하고 찾아간 행사였다면 이런 감정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특정한 순간을 마주쳤기 때문에 더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캠퍼스를 한 바퀴 돌아 나오는 동안 계속 같은 생각이 들었다. 대학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공부를 하는 장소라기보다 시간을 보내는 장소라는 점이다. 몇 년 동안 반복되던 일상이 끝나는 날을 다른 사람들의 모습으로 간접적으로 보게 된 셈이었다.

그날 졸업식은 거대한 이벤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매우 개인적인 장면들의 모음에 가까웠다. 가족 사진 한 장, 친구들과의 짧은 인사, 그리고 교문을 나서는 걸음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더 현실적인 기억으로 남는다.

우연히 들렀던 고려대학교는 관광지가 아니라 ‘순간’을 기록하는 장소가 되었다.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오래 머문 것도 아니었지만, 그날의 공기와 장면은 꽤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졸업식이라는 것은 행사라기보다 시간의 구간이 바뀌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 📍 주소 : 서울 성북구 안암로 145
  • 📞 전화번호 : 02-3290-1114
  • 🌐 홈페이지 : https://www.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