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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이퍼 설기현 — 유럽의 측면에서 시작되던 공격

흥미로운 점은 설기현의 플레이가 오히려 이 환경에서 더 또렷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측면에서 공을 오래 끄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공을 받으면 빠르게 판단했고, 단순하지만 정확한 선택을 했다. 크로스는 높이보다는 방향이 좋았고, 슈팅은 강하기보다 골문 구석으로 향했다.

한국 축구에서 2002년은 늘 이야기된다. 월드컵 4강이라는 결과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때의 선수들이 이후 어떤 길을 걸었는지를 돌아보면 더 흥미로워진다. 그중에서도 설기현이라는 이름은 조금 독특한 위치에 있다. 박지성처럼 팀의 중심으로 기억되는 선수도 아니고, 안정환처럼 극적인 장면 하나로 상징되는 선수도 아니다. 대신 어느 순간 화면에 등장해 결과를 만들어내던 선수였다. 그래서 기억 속에서도 늘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는 선수’로 남는다.

그의 별명이 “스나이퍼”였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경기를 지배하는 타입의 선수는 아니었지만, 필요한 장면에서 정확하게 등장했다. 눈에 많이 띄는 선수라기보다, 장면을 남기는 선수였다. 그리고 그 장면들은 대부분 유럽 무대에서 만들어졌다.


안데를레흐트에서 시작된 이야기

설기현의 유럽 커리어는 벨기에의 안데를레흐트에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다. 지금이야 한국 선수가 유럽으로 가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당시만 해도 상황이 달랐다. 유럽 무대에서 뛰는 한국 선수는 많지 않았고, 특히 공격수가 자리를 잡는 일은 더 어려웠다. 수비나 활동량 중심의 역할은 맡길 수 있어도, 공격은 결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에서 설기현은 비교적 빠르게 자신의 위치를 만들었다. 그는 화려한 드리블러는 아니었고, 폭발적인 스피드를 가진 선수도 아니었다. 대신 공간을 읽는 능력이 있었다. 측면에서 공을 잡으면 무리하게 돌파하기보다 타이밍을 기다렸고, 순간적으로 들어오는 크로스는 날카로웠다. 공격 전개가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공을 문전으로 보내는 선택을 할 줄 아는 선수였다.

그래서 그의 플레이는 화려하기보다 실용적이었다. 눈에 띄는 장면은 적었지만, 공격의 마지막 단계에서 등장했다. 그 결과 안데를레흐트 시절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이름을 알리게 된다. 지금보다 훨씬 높은 벽으로 여겨지던 유럽 무대에서 한국 공격수가 골을 넣었다는 사실 자체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잉글랜드 — 더 거칠고 더 직접적인 축구 속에서

이후 그는 잉글랜드 무대로 향한다. 울버햄프턴, 그리고 레딩으로 이어지는 시기였다. 벨기에 리그와 잉글랜드 리그의 차이는 분명했다. 공간이 줄어들고 템포가 빨라졌다. 기술보다 몸싸움이 많았고, 판단할 시간은 더 짧아졌다.

흥미로운 점은 설기현의 플레이가 오히려 이 환경에서 더 또렷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측면에서 공을 오래 끄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공을 받으면 빠르게 판단했고, 단순하지만 정확한 선택을 했다. 크로스는 높이보다는 방향이 좋았고, 슈팅은 강하기보다 골문 구석으로 향했다.

레딩 시절의 골 장면들을 떠올려 보면 대부분 비슷하다. 화려한 개인기로 수비를 제친 뒤 넣는 골이 아니라, 흐름 속에서 만들어지는 골이다. 박스 바깥에서 낮게 깔리는 슈팅, 수비 사이로 들어오는 침투 후 마무리, 혹은 문전 혼전 상황에서의 정확한 터치. 경기 전체를 지배하지 않지만, 결과를 남기는 공격수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의 플레이는 하이라이트보다 경기 전체를 봐야 더 잘 이해된다. 경기 내내 조용하다가도 한 번의 기회에서 결정적인 장면을 만든다. 축구에서 가장 어려운 능력 중 하나인 ‘한 번의 기회를 결과로 바꾸는 능력’을 가진 선수였다.


대표팀에서의 이미지

대표팀에서도 그의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팀 전술의 중심이 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특정 상황에서 필요해지는 카드였다. 공격이 막힐 때 측면에서 단순하게 올리는 크로스 하나, 혹은 중거리 슈팅 한 번이 경기 흐름을 바꾸는 장면이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대부분 경기 후반에 나온다. 상대 수비가 집중력이 떨어지는 시점에 나타나 결과를 만들었다. 그래서 설기현의 등장은 전술적인 교체 이상의 의미를 갖기도 했다. 분위기를 바꾸는 선수였다.

그가 ‘믿을 수 있는 선수’로 기억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경기력이 항상 화려했던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순간에 기대할 수 있는 선수였다. 감독 입장에서 벤치에 두면 안심이 되는 유형의 공격수였다.


왜 특별하게 기억되는가

설기현은 기록으로만 보면 대단히 압도적인 공격수는 아니다. 유럽 리그에서 수십 골을 넣은 스트라이커도 아니고, 팀의 간판 선수로 오래 남았던 선수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의 이름은 유독 또렷하게 남아 있다.

아마도 그가 활동하던 시기의 의미 때문일 것이다. 한국 선수의 유럽 진출이 지금처럼 체계적이지 않던 시절, 그는 실제로 공격수로서 경쟁하며 자리를 잡았다. 단순히 출전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남겼다. 그 장면들이 당시 팬들에게는 ‘가능성의 증명’처럼 보였다.

지금은 많은 한국 공격수들이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그 길이 자연스러워지기 전, 먼저 경험하고 결과를 남긴 선수들이 있었다. 설기현은 바로 그 경계선에 서 있던 선수였다. 화려한 스타라기보다, 길을 먼저 걸어본 선수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의 별명인 “스나이퍼”는 단순히 슈팅 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눈에 많이 띄지 않더라도 필요한 순간 정확히 등장해 장면을 남기던 선수. 유럽 무대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신의 존재를 남겼던 시절의 기억이 그 별명 안에 함께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