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오면 사진이 남고, 글이 남고, 기억이 남는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이상하게도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물건이다. 사진은 점점 덜 보게 되고, 글은 언젠가 다시 읽게 되지만, 책상 한 켠에 올려둔 작은 물건 하나는 아무 생각 없이도 계속 시야에 들어온다. 그래서 여행에서 사오는 물건은 사실 기념품이라기보다 기록물에 가깝다. 그때의 공기, 같이 걷던 사람, 찾느라 헤매던 시간까지 같이 묶여서 남기 때문이다.
이번에 가져온 물건은 애니메이션 체인소맨에 등장하는 주인공 덴지 피규어다. 체인소맨 의 캐릭터이고, 덴지를 모델로 만든 굿스마일 컴퍼니 제품이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샀다고 말하면 자연스럽겠지만, 사실은 조금 다르다. 나는 그때까지 이 작품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 물건을 사게 된 이유는 작품이 아니라 ‘여행’이었다.

찾는 과정이 더 기억에 남는 굿즈
도쿄 여행을 갔던 당시, 생각보다 체인소맨 굿즈를 취급하는 매장이 많지 않았다. 애니메이션은 분명 화제가 되었는데, 막상 오프라인 매장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아키하바라를 돌아다니면 뭐든 다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특정 작품은 유독 안 보이는 경우가 있다. 바로 그 케이스였다.
그날은 이 굿즈를 꼭 사야 한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함께 여행을 간 지인이 최근에 체인소맨을 굉장히 재미있게 봤고, 자연스럽게 “한 번 찾아볼까?”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여행에서 이런 순간은 자주 생긴다. 꼭 해야 하는 일정이 아니라, 같이 걷다가 갑자기 생기는 일정. 오히려 그런 일정이 여행의 기억이 된다.
매장을 몇 군데나 돌아다녔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기억나는 건 ‘없다’라는 말이었다. 진열장은 있는데 물건이 없거나, 포스터만 있고 굿즈는 없는 경우가 반복됐다. 그래서 결국 이 피규어를 발견했을 때의 감정은 구매의 기쁨이라기보다 발견의 안도감에 가까웠다. 쇼핑이라기보다 탐색의 끝 같은 느낌이었다.

왜 하필 덴지인가
덴지는 화려한 캐릭터가 아니다. 설정만 보면 오히려 굉장히 단순한 캐릭터에 가깝다. 거창한 목표나 사명을 가진 영웅도 아니고, 세계를 구하겠다는 의지도 없다. 밥을 먹고 싶고, 잠을 자고 싶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먼저인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덴지는 이상하게 현실적인 캐릭터다. 보통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은 대단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만, 이 캐릭터는 오히려 아주 사소한 욕망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작품을 보지 않았던 당시에도, 캐릭터 디자인만 보고도 묘하게 기억에 남았다. 귀엽게 만들어진 피규어임에도 어딘가 힘이 빠져 있는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굿즈를 고를 때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캐릭터의 성격을 고른다. 좋아하는 캐릭터를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상태와 맞는 캐릭터를 고르는 경우가 많다. 여행 중이라는 상황도 영향을 준다. 일정과 이동으로 피곤한 상태, 낯선 도시에서 걷고 또 걷던 날, 그런 시간 속에서 덴지는 지나치게 잘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애니메이션보다 먼저 남는 물건
이 피규어의 재미있는 점은, 내가 작품을 본 뒤에 산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은 애니메이션을 보고 좋아하게 되고, 그 다음에 굿즈를 산다. 그런데 이건 순서가 반대였다. 먼저 물건이 생기고, 나중에 작품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이 물건은 캐릭터 굿즈라기보다 여행 기록물의 성격이 더 강하다. 책상 위에 올려두면 애니메이션 장면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아키하바라 골목이 떠오른다. 매장을 들어갔다가 나오고, 또 들어가고, 결국 찾았던 순간의 피곤함과 웃음 같은 것들이 같이 떠오른다.
굿즈라는 건 원래 소비의 결과물이지만, 여행에서 산 굿즈는 과정의 결과물이 된다. 얼마였는지, 희귀한지, 퀄리티가 어떤지는 오래 기억에 남지 않는다. 대신 누구와 함께 찾았는지는 오래 남는다. 그래서 여행에서 산 물건은 결국 사람의 기억과 연결된다.
물건은 시간을 붙잡아 둔다
사진은 의식적으로 열어봐야 하지만, 물건은 가만히 있어도 계속 보인다. 그래서 여행 기념품은 일종의 앵커(anchor)가 된다.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시기의 시간을 붙잡아 둔다. 특히 피규어처럼 눈에 띄는 물건은 더 그렇다. 지나가다 한 번씩 시선이 머무르고, 그때마다 짧게라도 기억이 재생된다.
이 덴지 피규어도 그렇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라기보다, 특정한 여행의 주인공 같은 느낌이다. 도쿄라는 도시, 같이 걷던 사람, 찾다가 포기하려던 순간, 마지막 매장에서 발견했던 장면. 그 장면들이 이 작은 물건 하나에 묶여 있다.
그래서 여행이 끝나고 나면 사진 정리보다 먼저 물건의 자리를 정하게 된다. 어디에 둘지 고민하고, 책상 위 한 자리를 내어준다. 결국 여행은 끝났지만, 그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물건이 계속 그 시간을 현재형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여행은 결국 지나가지만, 물건은 남는다. 그리고 가끔은 그 물건 하나가, 그 여행 전체보다 더 오래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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