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코 GR 이후, 다시 시작된 카메라 고민
오랫동안 사용하던 카메라가 하나 있었다. 리코 GR이었다.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만들었던 카메라였고, 여행 기록의 대부분이 그 카메라로 남아 있다. 문제는 성능이 아니라 시간이었고, 어느 순간부터 경통이 제대로 열리지 않는 증상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으려고 전원을 켜면 렌즈가 나오지 않거나, 한 번 튀어나온 렌즈가 다시 들어가지 않는 상황이 생겼다.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카메라 고장은 단순한 기계 고장이 아니다. 기록이 끊기는 느낌에 가깝다. 그래서 결국 새로운 카메라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DSLR로 갈까도 고민했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무게였다. 매일 들고 다니지 않는 카메라는 결국 사용 빈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나는 여행과 일상 기록이 목적이었고, “항상 휴대 가능한 카메라”가 더 중요했다.
그 결과 다시 선택지는 하나로 좁혀졌다. 하이엔드 콤팩트 카메라였다. 그리고 그 끝에서 고르게 된 모델이 바로 소니 RX100M4였다.

소니 하이엔드 콤팩트 카메라 RX100M4
RX100 시리즈는 당시 이미 유명했다. 흔히 말하는 “최강의 똑딱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던 카메라였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크기인데 성능은 DSLR에 근접한다는 평가를 받던 모델이었고, 실제로 사진 커뮤니티에서도 평가가 매우 높았다.
처음 만졌을 때 느낌은 분명했다. 리코 GR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카메라였다. 리코가 사진가 지향적인 조작감이라면, RX100M4는 기술 지향적인 카메라에 가까웠다. 버튼 감각이나 그립감은 리코 쪽이 더 좋았지만, 하드웨어 스펙만 놓고 보면 RX100M4가 훨씬 앞서 있었다.
- 조리개: F1.8 – F2.8
- 셔터속도: 최대 1/32,000초
- ISO: 80 – 12800
특히 마음에 들었던 건 조리개였다. F1.8이라는 수치는 생각보다 체감 차이가 크다. 이전 카메라가 F2.8이었기 때문에 해가 지거나 실내에 들어가면 ISO를 크게 올려야 했는데, RX100M4로 바꾸고 나서는 같은 상황에서도 훨씬 안정적인 노출을 얻을 수 있었다. 단순히 밝아진다기보다 “버틴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작고 가벼운데 결과물은 가볍지 않다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좋은 사진은 좋은 카메라가 아니라 많이 들고 다니는 카메라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DSLR은 분명 결과물이 좋다. 하지만 매일 들고 나가기 어렵다. 결국 여행이나 특별한 날에만 사용하게 된다.
RX100M4는 완전히 반대였다.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크기였다. “오늘은 사진 찍어야지”라는 마음을 먹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들고 나가게 되는 카메라였다. 그리고 그 차이가 사진의 양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스냅사진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이 존재한다. 그 순간은 준비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나온다. 그래서 카메라는 항상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 RX100M4는 그 조건을 만족시키는 카메라였다.

RX100 시리즈 중 M4를 선택한 이유
당시 이미 RX100M5가 출시된 상태였다. 물론 최신 모델이 가장 좋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M5는 100만 원이 넘는 가격대였고, 부담이 컸다. 카메라를 처음 시작하는 입장에서 과도한 투자였다.
그래서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한 세대 이전 모델인 M4였다.
마침 행사 기간이어서 849,000원에 구매할 수 있었고, 가죽 케이스와 스트랩도 함께 제공됐다. 최신 모델을 고집하기보다는 가성비를 선택한 셈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성능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체감 성능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결과물에 대한 인상
사진은 결국 결과물로 판단하게 된다. RX100M4의 사진은 전형적인 소니 특성이 강했다. 선명하고 대비가 또렷하며 색이 비교적 시원하게 표현된다. 리코 GR이 필름적인 느낌에 가깝다면, RX100M4는 디지털적 완성도에 가까운 이미지였다.
야간에서는 확실히 한계는 존재했다. 센서 크기가 APS-C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크기의 콤팩트 카메라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상위권 결과물을 보여줬다. 특히 낮과 실내 환경에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영상 성능, 그리고 기술적 특징
RX100M4가 특히 주목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영상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4K 촬영을 지원했고, 슬로모션 촬영 기능도 상당히 강력했다. 하이엔드 콤팩트 카메라에서 영상 성능이 이 정도로 강조된 모델은 흔치 않았다.
물론 4K 촬영에는 조건이 있었다. 고속 메모리 카드가 필요했고 발열 제한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 카메라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기능이었다. 단순한 사진용 카메라가 아니라 “멀티미디어 카메라”에 가까운 성격이었다.

리코 GR과 다른 의미의 시작점
돌이켜보면 리코 GR은 사진을 시작하게 만든 카메라였다. 반면 RX100M4는 사진을 계속하게 만든 카메라였다. 항상 들고 다니게 되었고, 그래서 기록이 끊기지 않았다. 여행, 일상, 행사, 산책까지 대부분의 장면이 이 카메라로 남았다.
카메라의 역할은 결국 기록이다. 성능이 최고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사용하게 만들어야 한다. RX100M4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낸 카메라였다. DSLR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대신 항상 함께 있었다.
그리고 사진에서는 그 차이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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