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카메라를 새로 살 생각이 없었다. 리코 GR을 오래 썼고, 이후에는 소니 RX100M4까지 거치면서 이미 “사진은 장비보다 습관”이라는 결론에 거의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더 결정적이었던 건 아이폰 14 Pro였다. RAW 촬영이 가능해지고, 처리 알고리즘이 좋아지면서 일상 기록이라는 목적만 놓고 보면 스마트폰이 카메라를 상당 부분 대체해버렸다. 실제로 여행을 가도 굳이 카메라를 들지 않아도 결과물에 큰 불만이 없었다. 예전 같으면 카메라 가방을 챙기던 상황에서 이제는 주머니 하나면 끝났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진에 대한 욕심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스마트폰 사진이 충분히 괜찮아질수록, 반대로 “그래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라는 영역이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 또렷해졌다. 스마트폰은 언제나 평균 이상의 결과를 보장하지만, 평균을 크게 넘는 결과를 만들기는 어렵다. 특히 인물, 공연, 저조도, 연속 촬영 같은 상황에서는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결국 문제는 편의성이 아니라 ‘표현의 범위’였다.
그래서 다시 카메라를 사게 됐다. 그리고 그 선택이 캐논 R6 Mark II였다.

새 제품 대신 중고를 선택한 이유
사실 처음부터 R6 Mark II를 바로 산 것은 아니다. 꽤 오래 고민했다. 가격이 가격이기 때문이다. 바디와 렌즈를 합치면 가볍게 300만 원을 넘어가는 장비는 취미의 영역을 넘어선다. “좋아하니까 산다”로 정당화하기에는 금액이 너무 현실적이다. 게다가 당시 상황이 애매했다. 곧 R6 Mark III가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던 시기였다.
그래서 결론은 단순했다. 새 제품을 사는 건 비효율적이다.
어차피 후속기종이 나오면 가격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고, 초기 물량은 항상 부족하다. 그래서 차라리 중고로 먼저 사용하고, 후속기종이 안정적으로 풀리면 그때 새 제품으로 넘어가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결과적으로 바디와 RF 24-105mm F4 L IS USM 렌즈를 합쳐 약 330만 원 정도에 구매했다. 중고였지만 상태는 매우 양호했고, 실제 사용 만족도도 생각보다 높았다. 적어도 “왜 샀지?”라는 후회는 들지 않는 수준이다.

R6 Mark II — 스펙보다 중요한 건 ‘촬영 경험’
R6 Mark II의 장점은 스펙표만 보면 잘 체감되지 않는다. 센서는 2,420만 화소 풀프레임 CMOS이고, 최신 고화소 바디들에 비하면 수치 자체는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이 카메라의 핵심은 해상도가 아니라 밸런스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바로 느껴진다. AF가 매우 안정적이다.
캐논의 듀얼 픽셀 CMOS AF II는 인물 인식 능력이 상당히 정확하다. 눈 인식은 물론이고, 공연장에서처럼 조명이 계속 바뀌는 환경에서도 초점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리코 GR은 스냅에 강했지만 빠른 상황에는 약했고, RX100M4는 AF가 불안정했다. 반면 R6 Mark II는 “찍히겠지?”가 아니라 “찍힌다”는 확신을 준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사진 촬영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요소가 초점 실패이기 때문이다.
연사 성능도 인상적이다. 전자 셔터 기준 최대 40fps까지 가능하고, 버퍼도 넉넉하다. 사실 일반 촬영에서는 이 정도까지 쓸 일은 많지 않지만 공연 촬영이나 인물 연속 표정 포착에서는 체감이 확실히 된다. 좋은 표정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잡는’ 쪽으로 촬영 방식이 바뀐다.
그리고 의외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고감도 성능이다. ISO 6400 정도는 사실 의미가 없는 수치에 가깝다. 그냥 기본 감도처럼 써도 된다. 스마트폰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해도 저조도 환경에서의 자연스러운 질감은 아직 센서를 이기지 못한다. 밤 공연이나 실내 촬영에서 셔터속도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부담이 없고, 심지어 ISO 12800은 물론이고 25600까지 올려도 결과물이 ‘사용 불가’ 수준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고감도를 올리는 순간 노이즈와 타협해야 했는데, 이 카메라는 노이즈를 감수하고 찍는 게 아니라 그냥 찍으면 되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역광, 공연 조명, 어두운 실내 같은 환경에서도 결과물이 꽤 안정적으로 나온다.

RF 24-105mm F4 L IS USM — L렌즈다운 안정감
이 렌즈를 사용하면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화질이 “특정 상황에서 좋다”가 아니라 항상 일정하다는 점이다. 줌렌즈는 보통 화각에 따라 결과물이 크게 달라진다. 광각에서는 흐릿하고 망원에서 좋아지거나, 반대로 특정 구간만 쓸 만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RF 24-105mm F4 L은 24mm부터 105mm까지 결과물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여행에서 사진을 정리해보면 특정 화각만 선명하고 다른 화각은 버려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특히 24mm 광각에서의 해상력이 생각보다 안정적이다. 보통 이 구간은 주변부가 무너지기 쉬운데, 건물이나 실내 공간을 촬영했을 때 가장자리까지 크게 불만이 생기지 않는다. 예전 EF 24-105 1세대와 비교하면 확실히 개선된 느낌이고, R6 Mark 2의 센서를 충분히 활용하는 수준이다.
색감도 L렌즈 특유의 경향이 있다. 과장되게 쨍하지 않고, 대신 명암 대비가 안정적이다. 후보정에서 밀어 올려도 색이 쉽게 깨지지 않는다. 그래서 RAW 파일 작업할 때 유연하다. 스마트폰 사진과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 바로 이 ‘보정 여유’다. 밝기와 화이트밸런스를 조금 틀어도 결과물이 무너지지 않는다.
손떨림 보정 — 생각보다 체감이 큰 기능
이 렌즈에서 의외로 크게 느껴지는 장점은 손떨림 보정(IS)이다. 바디에도 손떨림 보정이 들어가 있지만, 렌즈 보정과 함께 작동하면 체감이 확 달라진다.
실제 촬영에서는 스펙보다 체감이 더 크다. DSLR 시절에는 50mm에서 1/60초 아래로 내려가면 성공 컷 비율이 급격히 떨어졌는데, 지금은 1/10초 근처에서도 사용할 만한 결과물이 나온다. 그래서 야경이나 실내 촬영에서도 ISO를 억지로 올릴 필요가 줄어들었다.
결국 F4의 단점을 어느 정도 상쇄해준다. 단순히 “흔들림을 막아준다” 수준이 아니라, 촬영 방식 자체를 바꿔준다는 쪽에 가깝다. 삼각대를 챙기지 않고도 촬영 가능한 장면이 늘어난다.

AF 성능 — R6 Mark 2와 궁합이 좋은 이유
이 렌즈는 나노 USM 모터를 사용한다. 말로 보면 그냥 조용하고 빠르다는 이야기 같지만, R6 Mark 2에서 체감은 꽤 크다.
피사체 추적 AF를 켜고 인물을 촬영하면 초점이 거의 ‘붙는다’. 특히 70~105mm 구간에서 인물 촬영할 때 얼굴 인식과 눈 인식이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공연이나 행사 촬영에서 순간적인 표정이 나오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이유가 사실 바디만이 아니라 렌즈 구동 속도 덕분이기도 하다.
영상에서도 장점이 있다. 포커스 이동이 부드럽고, 초점 소음이 거의 없다. 마이크를 카메라에 직접 연결해도 포커스 모터 소리가 녹음에 들어오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사진용 렌즈지만 영상 촬영에서도 꽤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다.
왜 단렌즈 대신 이 렌즈인가
단렌즈는 결과물이 확실히 좋다. 배경 흐림도 크고, 인상적인 사진이 나오기 쉽다. 대신 촬영 자체가 준비된 상황에서만 유리하다. 장소와 거리를 맞춰야 하고, 순간 대응이 어렵다.
반대로 이 렌즈는 “사진 찍기 위해 움직이는 방식”이 아니라 움직이다가 사진을 찍게 만드는 렌즈다. 카메라를 가져가면 찍게 된다. 그리고 많이 찍게 된다. 결국 사진의 양이 늘어나고, 그 중에서 좋은 사진이 나온다.
그래서 이 렌즈는 최고 화질을 만드는 렌즈라기보다, 사진 생활을 유지하게 만드는 렌즈에 가깝다. 실제로 카메라를 오래 쓰게 만드는 건 성능이 아니라 편의성인 경우가 많다.
아쉬운 점 — 결국 밝기는 한계가 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실내 공연처럼 조명이 약한 환경에서는 셔터속도를 확보하려면 ISO를 올릴 수밖에 없다. 배경 흐림도 인물 단렌즈 수준은 아니다. 105mm에서도 ‘아웃포커싱이 된다’ 정도이지, 인물 사진용 렌즈의 느낌은 아니다.
하지만 대신 얻는 것은 실패하지 않는 촬영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결과는 가져온다. 그래서 결국 이 렌즈는 “최고의 사진”을 만드는 렌즈라기보다 가장 많은 사진을 남기게 만드는 렌즈라는 표현이 더 맞다.

다시 생긴 욕심
이 조합의 가장 큰 변화는 사진 촬영 빈도였다. 스마트폰은 기록을 남기게 만들지만, 카메라는 장면을 찾게 만든다. 들고 나가면 괜히 한 컷 더 찍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즐겁다. 결과물이 좋아서라기보다, 촬영 과정이 다시 취미가 된 느낌이다.
물론 지금 구성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인물 촬영을 본격적으로 하려면 밝은 단렌즈가 필요하고, 공연 촬영에는 망원렌즈도 필요하다. 그래서 여유가 되면 50mm나 85mm 단렌즈를 추가로 들일 생각이다. 아마 그때부터는 이 카메라의 진짜 성능을 더 제대로 쓰게 될 것 같다.
지금 단계에서 R6 Mark II + 24-105mm F4 L 조합은 ‘완성된 장비’라기보다는 ‘출발점’에 가깝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다. 스마트폰이 사진을 대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카메라는 여전히 사진을 취미로 만들 수 있는 장비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다시 느끼게 해준 장비가 바로 이 카메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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