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 가장 ‘교토다운 장면’을 떠올리면 대부분 같은 풍경으로 이어진다. 목조 가옥이 이어진 골목, 완만한 돌계단, 그리고 그 끝에서 이어지는 사찰의 지붕선. 야사카 탑을 지나 기요미즈데라로 향하는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니넨자카와 산넨자카는 바로 그 이미지의 중심에 있는 거리다. 관광 명소라기보다, 교토라는 도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압축해 놓은 공간에 가깝다.
실제로 동선도 자연스럽다. 야사카 신사에서 출발해 호칸지를 지나면 길이 점점 좁아지고, 차량 소음이 사라지면서 걷는 속도가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발밑의 아스팔트가 돌로 바뀌는데, 그 지점부터가 사실상 니넨자카의 시작이다.


밤에 더 또렷해지는 거리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미 저녁이었다. 대략 8시쯤이었는데, 다른 관광지를 기준으로 하면 그리 늦은 시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교토의 골목 상점들은 생각보다 빨리 문을 닫는다. 카페와 기념품점 대부분이 5시~6시면 영업을 마치기 때문에, 거리 전체가 예상보다 빠르게 어두워진다.
처음에는 아쉬웠다. 상점 구경을 거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걷다 보니 오히려 이 시간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로 가득 찬 낮 시간대의 니넨자카는 ‘관광지’지만, 밤의 니넨자카는 ‘골목’에 가깝다.
사람이 거의 없는 돌계단을 걸으면 발소리가 크게 들린다. 가게 간판의 불빛만 남아 있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실내 조명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사진 촬영도 훨씬 수월했다. 낮에는 구도를 잡기도 어려운 장소지만, 밤에는 마음 놓고 멈춰 설 수 있었다.


니넨자카 — 2년 비탈길
니넨자카(二年坂)는 말 그대로 ‘2년 언덕’이라는 뜻이다. ‘사카(坂)’는 일본어로 경사진 길, 즉 비탈길을 의미한다.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고다이지(高台寺)로 이어지는 참배길에서 비롯되었다는 해석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길 주변에는 교토 특유의 마치야(町家) 건물이 늘어서 있다. 겉에서 보면 단순한 목조 건물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길게 이어진 구조로 되어 있어 앞은 상점, 뒤는 생활 공간으로 사용되던 전통 가옥 형태다. 지금은 대부분 기념품점이나 찻집, 디저트 가게로 바뀌었지만, 골목의 구조 자체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니넨자카가 특히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교토 경관 보존 정책 때문이다. 이 일대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있어 건물 높이, 외벽 색, 간판 크기까지 규제를 받는다. 그래서 새로 지은 가게라도 옛 건물처럼 보인다. 관광용으로 만든 세트장이 아니라 실제 생활 공간이 유지된 결과다.
낮에는 인파가 많아 그 사실을 느끼기 어렵지만, 밤에 걸으면 거리의 성격이 확연히 드러난다. 단순히 예쁜 골목이 아니라,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생활 공간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고다이지, 그리고 돌계단길의 배경
니넨자카와 산넨자카 일대는 단순한 생활 골목이 아니라 역사적 배경을 가진 길이기도 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그의 정실 네네(기타노만도코로)가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고다이지(高台寺)를 창건하면서 이 길은 사찰로 향하는 참배 동선으로 정비되었다. 지금의 돌계단과 석재 포장은 이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당시 교토의 일반 서민 주거지 골목에서는 보기 어려운 형태였다.
고다이지는 단순한 개인 사찰이 아니라 히데요시를 기리는 상징적 공간이었기 때문에, 참배객과 승려, 수행자들이 오가는 길 역시 일정 수준의 격식을 갖추어야 했다. 그 결과 주변 일대의 길이 정비되고 계단이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오늘날의 니넨자카와 산넨자카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평범한 주거지 골목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사찰 진입로에 가까운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현재 여행객들이 걷고 있는 돌계단길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관광지로 알려지기 훨씬 이전부터 종교적 이동 경로로 사용되었던 공간이며, 교토 특유의 돌 포장과 완만한 경사가 남아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오래된 골목이 보존된 것이 아니라, 16세기 교토의 권력 구조와 신앙 공간이 도시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길을 걷다 보면 풍경이 유난히 정돈되어 있고, 일반적인 주택가 골목과는 다른 안정감이 느껴진다. 오늘날에는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채워진 장소이지만, 원래는 누군가를 추모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걸어 올라갔던 길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 공간이 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산넨자카 — 3년 비탈길
니넨자카를 지나면 자연스럽게 산넨자카(三年坂)가 이어진다. 이름은 ‘3년 언덕’. 두 길은 거의 붙어 있어 별도의 경계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체감은 조금 다르다. 산넨자카는 계단의 경사가 더 뚜렷하고, 돌계단의 단차도 더 분명하다.
이 길에는 잘 알려진 전설이 있다. 산넨자카에서 넘어지면 3년 안에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관광객 사이에서는 거의 농담처럼 소비되지만, 그래서인지 계단을 내려갈 때 유독 조심하게 된다.
물론 해결책도 있다. 근처에서 판매하는 호리병박 부적을 가지고 있으면 불운을 피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진다. 실제로 골목 상점에서 작은 호리병박 장식품을 많이 판매하는데,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이런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
산넨자카는 역사적으로도 참배길이었다. 기요미즈데라로 향하는 길목이기 때문에 예전에는 순례자와 참배객이 반드시 지나던 길이었다. 지금은 관광객이 대부분이지만, 길의 역할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계단의 숫자와 돌길의 감각
산넨자카에는 약 40여 개의 돌계단이 이어진다. 숫자 자체보다 인상적인 것은 계단의 재질이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계단이 아니라, 오래 사용되며 자연스럽게 닳은 돌이다. 그래서 비 오는 날에는 실제로 꽤 미끄럽다.
걷다 보면 계단의 중앙 부분이 가장 많이 닳아 있는 것이 보인다.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이 같은 위치로 오르내린 흔적이다. 이런 요소 때문에 이곳은 단순히 오래된 ‘모양’이 아니라 오래 사용된 ‘길’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이 돌길의 감각은 기요미즈데라에 가까워질수록 더 분명해진다. 상점 간격이 조금 넓어지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사찰 방향으로 향한다.


낮과 밤의 차이
낮의 니넨자카·산넨자카는 매우 붐빈다. 특히 단풍철과 벚꽃철에는 이동 자체가 어려울 정도다. 대신 가게 대부분이 열려 있어 먹거리와 기념품을 즐기기 좋다. 전통 과자, 말차 디저트, 수공예품, 유카타 대여점까지 골목 전체가 하나의 시장처럼 변한다.
반대로 밤은 조용하다. 상점은 닫지만, 거리 조명이 켜지고 창호지 창문 안쪽의 빛이 남아 풍경이 훨씬 차분해진다. 사진을 찍기에는 오히려 이 시간이 더 좋다. 실제로 교토 사진집에서 자주 보이는 장면도 대부분 밤의 골목이다.
그래서 여행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두 번 걷는 것이 가장 좋다. 낮에는 구경을 하고, 밤에는 풍경을 보는 식이다.
기요미즈데라로 이어지는 길
이 돌계단을 계속 따라 올라가면 결국 기요미즈데라로 이어진다. 즉, 니넨자카와 산넨자카는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다. 하지만 교토 여행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사찰 내부는 어느 정도 비슷한 경험으로 남지만, 길은 개인적인 기억으로 남는다. 특히 이곳은 걷는 시간이 길지 않음에도 체류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자꾸 멈춰 서게 되기 때문이다.
골목이 좁고 시야가 짧아서 멀리까지 한 번에 보이지 않는다. 대신 코너를 돌 때마다 새로운 장면이 나타난다. 그래서 단순한 이동 경로가 아니라 하나의 산책로처럼 느껴진다.
교토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냐”는 질문을 받으면 사찰 이름 대신 이 길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별한 건물이 아니라 걷는 경험 자체가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 니넨자카 & 산넨자카 (Ninenzaka & Sannenzaka Streets)
- 📍 주소 : 2 Chome Kiyomizu, Higashiyama Ward, Kyoto 605-0826, Japan
- 📞 전화번호 : 없음 (거리 지역)
- 🌐 홈페이지 : http://www.2nenzaka.ne.jp/
- 🕒 운영시간 : 24시간 (상점은 대체로 09:00~17:00/18:00 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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