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축구의 아버지’라는 별명, 이른바 ‘해버지’라는 호칭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박지성이라는 이름이 한국 축구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데에는, 한두 번의 결정적인 장면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신뢰와 기억이 자리하고 있다. 그 출발점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2002년 한일월드컵이다.
2002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터뜨린 골, 그리고 그 직후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안기던 장면은 단순한 득점 장면을 넘어 하나의 서사로 남았다. 한국 축구가 처음으로 16강 진출을 확정짓던 순간이었고, 동시에 박지성이라는 이름이 국제 무대에 각인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장면 이후 그는 ‘월드컵 스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지만, 정작 그의 커리어는 그 이후부터가 더 중요했다.
월드컵 4강 신화를 함께 만든 뒤,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을 따라 네덜란드 무대로 향한다. 선택지는 안정적인 국내 잔류도, 혹은 다른 리그로의 도전도 가능했지만, 그는 당시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PSV 아인트호벤을 선택했다. 이 선택은 결과적으로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PSV 아인트호벤, 적응의 시간
그러나 네덜란드에서의 시작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이적 직후 박지성은 팀 내에서 확고한 입지를 얻지 못했고, 경기력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홈 경기에서 공을 잡을 때마다 야유를 듣는 상황도 반복됐다. ‘월드컵 스타’라는 타이틀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던 시기였다.
이 시점에서 히딩크 감독의 선택은 인상적이다. 그는 박지성을 홈경기 대신 원정 경기에 주로 투입했다. 야유가 덜한 환경에서, 조금 더 편안하게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 결정은 단순한 로테이션이 아니라, 선수의 심리 상태까지 고려한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시간이 지나며 분명한 효과를 만들어냈다.
박지성은 점차 네덜란드 리그의 템포와 신체적 접촉, 그리고 전술적 요구에 적응해 나갔다. 눈에 띄는 드리블이나 화려한 개인기는 아니었지만, 공간을 읽고 움직이는 능력, 팀 전술에 녹아드는 방식은 점점 더 안정감을 띠기 시작했다. 야유는 서서히 줄어들었고, 환호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성장의 증명, 유럽 무대
2003-04 시즌부터 박지성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출전 경기 수가 늘어났고, 공격 포인트 역시 눈에 띄게 증가했다. 그리고 2004-05 시즌, 그는 PSV의 확실한 주전 자원으로 자리 잡는다. 에레디비시 우승 경쟁의 중심에 서 있었고, 팀의 리그 독주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진짜 전환점은 유럽 무대였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철옹성처럼 여겨지던 AC 밀란을 상대로 터뜨린 골은, 박지성이라는 이름을 유럽 전역에 알리는 계기가 된다. 단순한 한 골 이상의 의미였다. 강팀을 상대로도 통할 수 있는 선수라는 증명이었고, PSV가 2000년대 들어 최고의 성적 중 하나인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오르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리옹과의 8강전, 그리고 AC 밀란과의 4강전에서 이어진 활약은 자연스럽게 빅클럽의 시선을 끌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주의 깊게 지켜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2004-05 시즌이 끝난 뒤, 박지성은 결국 세계적인 명문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된다.
숫자로 남은 기록, 그리고 그 이면
당시만 해도 네덜란드 리그에 대한 정보는 지금처럼 풍부하지 않았다. 국내 중계도 거의 없었고, 인터넷을 통해 경기 영상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그래서 박지성이 어떤 경기력을 보여주었는지, 실제로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체감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기록은 남았다.
- 2002-03 시즌: 8경기 출전(선발 2경기)
- 2003-04 시즌: 40경기(선발 30경기), 6골 4도움
- 에레디비시 28경기(선발 19경기) 6골 2도움
- 챔피언스리그 5경기
- 유로파리그 5경기 2도움
- 2004-05 시즌: 44경기(선발 43경기), 11골 7도움
- 에레디비시 28경기 7골 5도움
- 챔피언스리그 11경기 1골 1도움
이 숫자들은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초기의 부진을 딛고, 주전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PSV가 기억한 박지성
최근 PSV 구단은 박지성이 팀에서 뛰던 시절을 기념하며 ‘PSV 아인트호벤 베스트 골 10’을 공개했다. 이는 단순한 추억 팔기가 아니라, 그가 구단 역사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행위에 가깝다.
그리고 그 베스트 골 10의 1위는, 많은 이들이 예상했듯 AC 밀란을 상대로 터뜨린 챔피언스리그 골이었다. 이 골은 박지성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끄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동시에 ‘네덜란드에서의 시간’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박지성의 PSV 시절은 길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은, 이후 이어질 거대한 커리어를 가능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준비 과정이었다. 월드컵 스타에서 유럽 무대의 검증된 선수로, 그리고 세계 최고 클럽으로 향하기까지. 그 모든 연결고리는 네덜란드의 한 클럽에서,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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