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이즈미 녹지에서 마주한 하루의 기록
이번에 사카이까지 오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코프 페스타’라는 행사였다. 단순한 지역 축제라기보다는, 일본의 생활 협동조합인 코프(Co-op)가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참여형 행사에 가까운 자리였다. 만약 이 날, 이 시간에 시스(SIS/T)의 공연 일정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곳 사카이의 오이즈미 녹지까지 올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것은 종종 이렇게, 하나의 이유로 시작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경험으로 확장된다. 이번 사카이 일정 역시 그랬다.


“지역과 함께 숨 쉬는 축제, 코프 페스타”
코프 페스타는 지역 주민과 시민들이 생활 협동조합의 활동을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된 행사다.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장터가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어떤 철학으로 지역을 운영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자리라고 느껴졌다.
행사장에는 코프 거래처들이 참여한 부스가 줄지어 있었고, 농산물이나 생활용품을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체험 부스, 코프 트럭 승차 체험, 행정·환경 관련 전시까지 더해져 있어, 단순히 지나가다 들르는 축제가 아니라 하루를 보내기에도 충분한 밀도의 행사였다.



“자연 속에서 열리는 시민 축제”
이번 코프 페스타는 2014년 11월 9일, 사카이에 위치한 오이즈미 녹지 이시바 생광장에서 열렸다. 오사카 이즈미 시민 생활 협동 조합이 주최한 이 행사는, 도심에서 살짝 벗어난 녹지 공간이라는 점에서부터 이미 기존의 도심형 행사들과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대형 건물이나 인공적인 구조물 대신, 넓게 펼쳐진 잔디와 나무들이 행사장의 배경이 되었고,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이 축제가 지향하는 방향을 설명해주는 듯했다.
잔디와 나무로 둘러싸인 넓은 공간 위에 무대와 각종 부스들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고, 행사장의 소음마저도 공원 전체에 퍼지기보다는 자연 속으로 흡수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서로 섞이면서도 거슬리지 않았고, 오히려 공원의 풍경과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
보통 축제라고 하면 떠오르는 북적임이나 과열된 분위기보다는,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은 잔디 위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어른들은 부스를 하나하나 둘러보며 여유 있게 구경하는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다. 바쁘게 돌아다니기보다는, 머물러도 괜찮은 공간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도심 한복판에서 열리는 행사였다면 느끼기 어려웠을 이 느긋함은, 오이즈미 녹지라는 장소가 가진 힘 덕분이었을 것이다. 시끌벅적함 대신 편안함이, 긴장감 대신 여유가 중심이 되는 축제. 자연 속에서 열린다는 점이 단순한 배경을 넘어, 이 행사의 분위기와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체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코프 페스타는 ‘큰 행사’라기보다는, 지역 사람들이 모여 하루를 함께 보내는 ‘좋은 날’에 더 가까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공간에서라면, 공연을 보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사지 않더라도,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축제의 일부가 되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취재라는 이름으로 서게 된 자리”
행사장에 도착한 뒤, 자연스럽게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며 분위기를 파악했다. 무대 주변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한쪽에서는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돗자리를 펴고 쉬고 있었으며, 또 다른 쪽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형적인 ‘지역 축제’의 풍경이었고, 그만큼 모두가 편안해 보였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프레스는 어디에서 등록해야 하지?’
한국에서라면 규모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행사에는 프레스 데스크가 따로 마련되어 있고, 출입증이나 명찰을 배부하는 절차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안내 표지나 별도의 데스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내가 못 찾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행사장 입구부터 무대 뒤편까지 한 바퀴를 돌아봤지만, 역시 프레스 관련 표시는 없었다.
결국 행사 진행요원으로 보이는 분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짧은 일본어와 몸짓을 섞어 상황을 설명하자, 그분은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렇게 잠시 후, 필자는 이 행사의 최종 책임자로 보이는 인물에게 안내되었다.
영어로는 “President”라고 소개를 받았는데, 이 순간이 꽤 인상 깊었다. 단순히 위치를 묻다가, 갑자기 행사 최고 책임자와 마주 앉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이게 맞는 상황인가?’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미 흐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영어와 거의 되지 않는 일본어를 섞어가며, 한국에서 온 취재자라는 점을 설명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간 명함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상대방은 명함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외국에서, 그것도 한국에서 이 행사를 취재하러 온 사례는 처음이라며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반응이 호의적이어서, 긴장이 조금 풀렸던 기억이 난다.
공식적인 프레스 구분이나 출입 제한은 없으니, 자유롭게 촬영하고 취재해도 괜찮다는 허락도 받을 수 있었다. 이 한마디로, 이 공간에서의 내 위치가 명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관객이면서 동시에 기록자, 그 중간 어디쯤에 서게 된 것이다.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하다”
대화가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이 자리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도 설명하게 되었다. 바로 오후 2시에 예정된 시스(SIS/T)의 공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이들의 무대를 보기 위해 일부러 오사카, 그것도 사카이까지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관계자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달라졌다.
특히 ‘한일가왕전’을 통해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아졌고, 당시에는 일본보다 오히려 한국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를 전했을 때, 꽤 놀란 눈치였다. 일본의 지역 축제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를, 외국에서 취재하러 왔다는 사실 자체가 생소했던 것 같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 행사가 가진 성격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다. 대형 공연이나 상업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한 시민 축제. 그런 무대에 외부 시선이 더해진다는 점이 오히려 신선하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촬영과 취재에 대한 허락까지 모두 받은 상태에서, 이제 남은 것은 공연을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무대 앞쪽으로 다시 자리를 옮기며 주변을 바라보니, 조금 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풍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순히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이 아니라, 이 현장을 기록해야 하는 사람으로 서 있다는 감각이 서서히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 시점까지는 모든 흐름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순조로웠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변수가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하이라이트 — 시스(SIS/T)의 무대”
오후 2시,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무대 위로 시스(SIS/T)가 등장하자, 광장 앞쪽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인파가 몰려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음악이 시작되자 주변에 흩어져 있던 관객들이 하나둘씩 무대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자연스럽고도 느슨한 집중 상태에 가까웠다.
이날 무대에서 선보인 곡은 〈Dancing Queen〉, 〈사랑의 배터리(일본어 버전)〉, 〈Stay with Me〉, 〈푸른 산호초〉. 일본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곡들로 구성된 세트리스트 덕분에, 처음 보는 관객들도 쉽게 리듬을 타며 반응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손뼉을 치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음악을 따라가는 모습이 무대 앞 여기저기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곡 사이사이에 이어진 멘트에서는 멤버들의 여유가 느껴졌다. 큰 무대에서의 긴장감보다는, 축제라는 공간에 맞춰 관객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이 날은 11월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더운 날씨였는데, 그런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집중력과 에너지를 유지하는 모습이 강하게 남았다.
자연 속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은 실내 공연장과는 전혀 다른 감각을 만들어냈다. 스피커를 통해 전달되는 소리 위로 바람이 지나가고, 그 사이사이에 박수 소리와 환호가 섞이며, 공연 자체가 공간과 함께 호흡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무대와 관객 사이의 경계도 비교적 느슨해서, ‘보는 공연’이라기보다는 ‘함께 만들어지는 시간’에 가까웠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무대 앞의 공기는 점점 더 뜨거워졌지만, 그 열기는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이 장소와 이 시간에 잘 어울리는 온도처럼 느껴졌고, 자연 속에서 즐기는 라이브의 매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했다. 이 날의 코프 페스타를 기억하게 만드는 장면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이 순간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공연 이후, 그리고 엇갈린 순간”
공연이 끝난 뒤, 무대 뒤편으로 이동해 준비해 간 꽃다발을 전달하려 했다. 이미 행사 최종 담당자와 취재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눈 상태였고, 촬영과 취재, 그리고 공연 이후의 동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공유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백스테이지 입구에서도 별다른 제지 없이 문이 열렸고,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기에, 그 순간까지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무대를 막 내려온 멤버들에게 다가가 꽃다발을 건네는 순간, 갑작스럽게 매니저로 보이는 인물이 다가와 제지를 했다. 상황은 순식간에 어색해졌고, 주변의 공기 역시 눈에 띄게 굳어졌다. 이미 꽃다발은 전달된 뒤였지만, 그 이후의 흐름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고, 불필요한 오해를 더 키우고 싶지 않았기에, 짧게 인사를 건넨 뒤 바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백스테이지를 나와 한쪽에서 상황을 정리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조금 전 나를 제지했던 매니저가 다시 다가와 일본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사전에 행사 측과 충분히 소통을 마친 상태였고, 취재 허가 역시 받았다는 점을 설명했다. 행사 최종 담당자의 명함도 함께 보여주며, 오해가 있을 수 있으니 다시 한 번 확인해 달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는 쉽게 납득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언어의 벽도 있었고, 서로가 서 있는 입장이 다르다 보니 대화는 점점 엇갈리기 시작했다.
결국 언성이 조금 높아질 수밖에 없는 순간도 있었다. 감정적으로 격해졌다기보다는, 상황을 바로잡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던 것에 가까웠다. 그러던 중, 처음 행사 최종 담당자를 만났을 때 함께 있었던 다른 스태프가 다가와 상황을 다시 설명해 주었고, 그제야 오해는 어느 정도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 이어진 대화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매니저는 일본에서는 아티스트에게 선물을 직접 전달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말을 들으며, 문화의 차이라는 것이 이렇게 현실적인 장벽으로 다가올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공연 취재 후 꽃다발을 전달하는 것이 비교적 자연스러운 장면이고, 특히 취재의 맥락 안에서는 흔한 일이라는 점을 설명했지만, 서로의 기준은 쉽게 맞춰지지 않았다.
긴 대화 끝에 결국 서로가 처한 문화적 배경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는 선에서 상황은 정리되었다. 큰 갈등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그 사이에 시간이 흘러버렸고, 결과적으로 아티스트와 따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유는 사라져버렸다.
공연 전에는 짧게나마 무대가 끝난 뒤 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기에, 그 부분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모든 과정 자체가 쉽게 얻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남은 것들”
모든 과정이 완벽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 경험이 아주 특별했다는 점이다. 사카이에서 열린 코프 페스타에, 한국에서 취재를 목적으로 찾아온 사람은 단 한 명. 그리고 시스의 공연을 보기 위해 이곳까지 온 한국인 역시 단 한 명이었을 것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 날의 기억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여행은 결국, 계획대로 흘러간 순간보다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이 오래 남는다.
📍 오이즈미 녹지
- 주소 : 128 Kanaokacho, Kita Ward, Sakai, Osaka 591-8022
- 전화번호 : +81-72-259-0316
- 홈페이지 : https://www.osaka-park.or.jp/nanbu/oizumi/main.html
🚩 2024 사카이 코프 페스타
- 행사 정보 : https://home.oizumi-ryokuchi.kokosil.net/ko/archives/16863
- 코프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izumi.co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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