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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여행 — 침사추이, 영화 ‘중경삼림’의 공간 “청킹맨션”

좁은 통로 양옆으로 작은 가게들이 빽빽하게 붙어 있었고, 다양한 언어가 동시에 들려왔다. 영어, 광둥어, 힌디어인지 우르두어인지 모를 말들이 섞여 흘러다녔다. 향신료 냄새와 음식 냄새, 오래된 건물 특유의 공기, 사람들의 시선과 움직임이 한꺼번에 겹쳐졌다.

홍콩의 대표적인 번화가를 꼽자면 보통 홍콩섬 센트럴 일대와 맞은편 침사추이(Tsim Sha Tsui)를 함께 이야기하게 된다. 침사추이는 관광객들에게 특히 익숙한 지역이다. 빅토리아 하버의 야경, 네이선로드의 화려한 간판, 각종 쇼핑몰과 호텔, 그리고 수많은 여행자들이 뒤섞이는 거리까지, 홍콩이라는 도시의 밀도 높은 에너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침사추이 한복판에서, 화려한 거리 풍경과는 전혀 다른 공기를 풍기는 건물이 하나 있다. 바로 청킹맨션(Chungking Mansions) 이다. 밖에서 보면 그저 오래된 복합 건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가는 순간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관광도시 홍콩의 표면 아래에 있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장소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1961년에 세워진 침사추이의 상징적인 건물

청킹맨션은 1961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오래된 건물이지만, 당시에는 현대식 대형 복합 주거 건물로 여겨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비교적 여유 있는 계층이 거주하던 아파트 성격이 강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건물의 성격은 크게 바뀌었다. 홍콩이 국제무역 도시로 성장하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청킹맨션 역시 점차 다문화 공간으로 변해갔다. 특히 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출신 상인과 노동자, 장기 체류자, 배낭여행객들이 모여들면서 지금의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래서 청킹맨션은 단순한 오래된 건물이 아니다. 홍콩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세계와 연결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축소판 같은 장소이기도 하다.


한 건물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세계

청킹맨션은 여러 동이 연결된 대형 건물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에는 게스트하우스, 환전소, 식당, 식료품점, 휴대폰 매장, 무역 사무실, 생활용품점 등 온갖 업종이 밀집해 있다.

홍콩 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한 번쯤 “청킹맨션 숙소”를 보게 된다. 실제로 이곳에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많이 몰려 있다. 침사추이라는 최상급 입지에 비해 가격이 낮기 때문에 예산 여행자들에게는 늘 후보지로 거론되는 곳이다.

다만 호불호는 분명하다. 건물이 오래되었고, 내부 동선이 복잡하며, 층마다 분위기 차이도 크다. 어떤 사람에게는 모험 같은 경험이 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청킹맨션은 단순히 ‘가성비 숙소’라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장소다.


1층에 들어서면 느껴지는 완전히 다른 공기

내가 처음 청킹맨션을 방문했을 때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1층의 공기였다. 밖의 네이선로드는 관광객과 쇼핑객으로 밝고 활기찬 분위기였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결이 완전히 달라졌다.

좁은 통로 양옆으로 작은 가게들이 빽빽하게 붙어 있었고, 다양한 언어가 동시에 들려왔다. 영어, 광둥어, 힌디어인지 우르두어인지 모를 말들이 섞여 흘러다녔다. 향신료 냄새와 음식 냄새, 오래된 건물 특유의 공기, 사람들의 시선과 움직임이 한꺼번에 겹쳐졌다.

분명 홍콩 안에 있는데, 동시에 홍콩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 들어온 듯한 느낌도 있었다.

이곳 1층에는 인도·파키스탄 계열 식당과 식료품점, 환전소 등이 많았다. 관광객 중심 상권과는 또 다른 생활형 상업 공간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청킹맨션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실제 사람들이 생업을 이어가는 장소라는 사실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사진을 찍다가 제지당했던 순간

나는 여행을 가면 자연스럽게 공간의 분위기를 기록하고 싶어 사진을 찍는 편이다. 청킹맨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워낙 독특한 장소였기에 내부 풍경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1층에서 카메라를 들었을 때, 곧바로 좋은 반응만 돌아오지는 않았다. 가게 쪽에서 사진 촬영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가 느껴졌고, 실제로 제지를 받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곳은 누군가에게는 여행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매일 일하는 삶의 현장이다. 관광객이 신기하다는 이유로 무심코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 순간 나는 이곳이 단순히 ‘특이한 장소’가 아니라, 각자의 현실이 쌓여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영화 속 장면처럼 음침했던 공간

청킹맨션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꽤 익숙한 이름이다. 바로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 의 배경으로 등장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청킹맨션은 홍콩의 화려함보다는 외로움, 속도감, 혼란, 도시의 그림자를 상징하는 공간처럼 그려진다.

흥미로운 것은, 내가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아직 영화를 보기 전이었다는 점이다. 즉, 영화의 배경지라는 정보를 알고 찾아간 것이 아니라 그냥 홍콩의 유명한 장소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먼저 들렀던 것이다.

그런데도 현장에서 느낀 감정은 비슷했다. 조금 어둡고, 조금 낡았고, 묘하게 긴장감이 흐르는 분위기.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건물일 수 있지만, 처음 방문한 여행자에게는 어딘가 설명하기 어려운 음침함이 있었다.

나중에 영화를 보고 나서야 생각했다.

‘아, 내가 느꼈던 그 공기가 바로 영화 속 공기였구나.’

영화를 먼저 보고 갔다면 장면을 따라가며 감상했겠지만, 나는 반대로 공간을 먼저 체험하고 나중에 영화로 이해하게 된 셈이다. 그 순서가 오히려 더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았다.


화려한 홍콩과는 다른 진짜 얼굴

홍콩을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야경, 쇼핑, 금융도시, 세련된 스카이라인을 떠올린다. 물론 그것도 홍콩의 진짜 모습이다. 하지만 청킹맨션 같은 공간을 보면, 홍콩은 그보다 훨씬 복합적인 도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민자와 여행자, 장사꾼과 노동자, 오래된 건물과 새로운 자본, 관광지의 화려함과 생활 공간의 거칠음이 한 도시 안에서 동시에 존재한다. 청킹맨션은 그런 홍콩의 이면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소다.

그래서 이곳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누군가는 불편함만 느낄 수 있고, 누군가는 강렬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청킹맨션은 흔한 관광 코스로는 설명되지 않는 장소라는 점이다.


한 번쯤은 지나가볼 만한 공간

혼자서 깊숙이 오래 머물기에는 조금 긴장되는 공간일 수도 있다. 내부 사진 촬영도 조심할 필요가 있고, 화려한 관광지처럼 편안하게 즐기는 장소도 아니다. 하지만 침사추이에 왔다면 한 번쯤은 지나가볼 만하다.

홍콩 영화 속 감성을 떠올리며 걸어도 좋고, 다문화 도시 홍콩의 현실적인 단면을 느껴봐도 좋다. 네이선로드의 반짝이는 간판 아래, 이렇게 전혀 다른 결의 세계가 숨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청킹맨션은 관광지라기보다, 홍콩이라는 도시를 조금 더 깊게 이해하게 만드는 장소였다.


📌 청킹맨션(重慶大廈 / Chungking Mansions)

  • 📍 주소 : 36-44 Nathan Rd, Tsim Sha Tsui, Kowloon, Hong Kong
  • 📞 전화번호 : 개별 업장·숙소별 상이
  • 🌐 홈페이지 : http://www.chungkingmansions.com.hk/
  • 🕒 운영시간 : 건물 공용부 24시간 출입 가능(개별 점포·숙소 운영시간 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