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자카 슬로프, ‘HELLO, TOKYO’의 짧은 정지 화면
시부야 타워레코드에서 또 다른 일행과 합류한 뒤,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음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부야에 온 김에 유명한 곳을 더 보자는 분위기라기보다는, 이미 정해진 한 장면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목적지는 시부야역을 기준으로 북서쪽, 지도상으로 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좁은 골목길이었다. 관광 안내서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 계단으로 이어진 작은 경사로. 이름은 스페인자카 슬로프였다.


시부야 한복판,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지나치게 되는 곳
스페인자카 슬로프는 흔히 말하는 ‘시부야 명소’와는 거리가 멀다.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처럼 일부러 사진을 찍으러 오는 곳도 아니고, 하치코 동상처럼 약속 장소로 쓰이는 곳도 아니다. 시부야를 여러 번 다녀본 사람이라도, 이 골목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오히려 목적 없이 시부야 골목을 걷다 보면 무심코 지나쳐 버릴 가능성이 더 높은 장소에 가깝다.
짧은 계단과 그 양옆으로 이어진 건물들, 그리고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풍경. 그런데도 이곳이 여행 일정에 포함된 이유는 분명했다. 카노우 미유의 ‘HELLO, TOKYO’ 뮤직비디오 속, 아주 짧지만 인상적인 장면이 바로 이 계단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HELLO, TOKYO’ 속 짧은 정지 화면 같은 장소
뮤직비디오에서 이 장소는 오래 등장하지 않는다. 미유가 계단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한, 지친 표정으로 화면에 스쳐 지나간다. 화려한 도쿄의 풍경도 아니고, 상경의 설렘을 보여주는 장면도 아니다. 오히려 도쿄라는 도시가 주는 낯섦과 고독이 잠깐 고개를 내미는 순간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이 장소는 더 기억에 남는다. 일부러 강조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진짜 도쿄의 골목처럼 느껴지는 장면. 우리는 바로 그 짧은 컷 하나를 확인하기 위해 이 계단 앞에 섰다.

밤에 마주한 스페인자카 슬로프
영상에서는 낮 시간대에 촬영된 장면이지만, 우리의 일정은 이미 해가 진 뒤였다. 시부야의 밤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고, 이 계단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지만,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기에는 충분했다.
낮에 보면 또 다른 인상을 주었을지 모르지만, 밤의 스페인자카 슬로프는 오히려 뮤직비디오의 감정과 더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불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빠르게 지나가는 발걸음들, 그리고 그 사이에 잠깐 서 있는 우리들. 영상 속 장면과 현실이 완전히 겹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닮아 있는 공기가 분명히 존재했다.
일부러 찾아온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감정
솔직히 말하면, 이곳은 굳이 추천할 만한 관광지는 아니다. 이 장소 하나만을 보기 위해 시부야를 찾을 이유는 없고, 카노우 미유의 뮤직비디오를 보지 않았다면 굳이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는 곳이다. 하지만 촬영지 투어라는 맥락 안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영상 속에서 잠깐 스쳐 지나간 장소를 실제로 밟아본다는 경험은, 단순한 관광과는 다른 종류의 만족감을 준다. “여기가 바로 그 장면이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여행은 풍경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 위에 쌓이기 시작한다. 스페인자카 슬로프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장소였다.
짧게 머물렀고, 사진 몇 장을 남겼을 뿐이지만, 이 계단은 분명 ‘HELLO, TOKYO’ 촬영지 투어의 한 페이지로 남았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시부야의 밤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 스페인자카 슬로프 정보
- 📍 주소 : 16-15 Udagawacho, Shibuya, Tokyo 150-0042
- 🌐 관련 안내 : https://www.city.shibuya.tokyo.jp/bunka/bunkazai/bunkazai/street.html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