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회관에서 시작된 기억의 회귀
아키하바라에서 ‘피규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장소는 역시 라디오회관이다. 2018년, 2019년 도쿄를 여행했을 때도 이곳은 빼놓지 않고 들렀던 장소였고,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비교적 선명하다. 좁은 통로, 층마다 전혀 다른 색깔의 매장, 그리고 유리 진열장 안에 빼곡히 채워져 있던 수많은 피규어들. 당시에는 특정 작품을 찾는다기보다는 “이런 세계가 있구나”라는 감탄에 가까운 시선으로 공간을 소비했었다.
이번 여행에서도 자연스럽게 라디오회관을 다시 찾았다. 다만 이번에는 목적이 훨씬 분명했다. 같이 이동한 지인이 체인소맨 굿즈를 찾고 있었고, 나 역시 “어디선가 하나쯤은 나오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라디오회관 내부를 한 바퀴 둘러보면서, 생각보다 빠르게 판단이 섰다. 체인소맨 관련 상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우리가 원하는 종류의 굿즈를 찾기에는 동선 대비 효율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선택한 대안이 바로, 라디오회관 바로 옆에 위치한 namco 秋葉原店(아키하바라점)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 전혀 다른 세계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에스컬레이터였다. 게임센터 특유의 소음과는 또 다른, 묘하게 정리된 분위기가 느껴졌고,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더 밝아지는 조명 아래에서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에스컬레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가챠 머신’의 행렬이었다. 단순히 몇 대가 늘어서 있는 수준이 아니라, 벽을 따라, 기둥을 따라, 심지어는 섬처럼 중앙에도 배치된 수십, 수백 대의 캡슐 자판기들이 한 층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여길 어떻게 다 봐?”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 다음에는 “이 중에 하나쯤은 있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가 따라붙었다.
가챠 문화는 일본을 떠올릴 때 자주 언급되지만, 이렇게 하나의 공간 전체가 가챠로 채워진 장면을 직접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각각의 기계마다 테마가 명확했고, 캐릭터도, 콘셉트도 전부 달랐다. 애니메이션, 게임, 음식, 동물, 심지어는 생활 소품을 미니어처로 만든 시리즈까지, 가챠라는 형식 안에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 듯했다.


체인소맨을 찾아서, 끝없는 스캔의 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탐색 모드’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그냥 눈에 띄는 것부터 훑어봤지만, 금세 전략을 바꾸게 됐다. 하나하나 멈춰 서서 보는 방식으로는 시간이 끝도 없이 소모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자 한 줄씩 맡아 기계를 스캔하듯 살펴보기 시작했다. 캡슐 위에 붙어 있는 작은 포스터를 빠르게 읽고, 캐릭터 이름을 확인하고, 아니면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는 식이었다.
- “이건 아니고.”
- “여기도 다른 작품이네.”
- “이건 처음 보는 캐릭터다.”
짧은 말들이 자연스럽게 오갔고,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집중도가 높아졌다. 체인소맨 특유의 그림체나 색감이 눈에 들어올 것 같으면서도, 비슷한 분위기의 다른 작품들이 워낙 많다 보니 자꾸 헷갈리기도 했다.
중간중간 “이거 체인소맨 아냐?” 하고 멈춰 서기도 했지만, 자세히 보면 전혀 다른 작품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몇 줄을 지나고, 또 몇 줄을 돌아봐도 목적한 기계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가챠 머신을 돌리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았고, 캡슐이 떨어지는 소리와 동전이 굴러가는 소리가 이 공간의 배경음처럼 이어졌다.
찾지 못했지만, 분명한 ‘경험’은 남았다
결국 층을 거의 한 바퀴 다 돌았을 즈음, 우리는 자연스럽게 속도를 늦췄다. 체인소맨 굿즈를 다루는 가챠 머신이 있다는 이야기는 분명 들었지만, 적어도 이 공간 안에서는 찾지 못했다는 결론에 가까워졌다. 아쉬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허무한 기분만 남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키하바라에는 이런 방식의 소비도 있구나”라는 감각이 더 또렷하게 남았다. 피규어샵에서 진열된 상품을 보고 가격을 비교해가며 구매를 결정하는 방식과 달리, 가챠는 철저히 ‘우연’에 기대는 구조다.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이 공간 전체를 하나의 놀이처럼 만들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구매 여부보다도 ‘참여’ 자체가 더 중요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키하바라의 또 다른 얼굴
라디오회관이 “전시와 선택의 공간”이라면, 반다이 남코 가차샵은 “확률과 반복의 공간”에 가까웠다. 같은 서브컬처를 다루고 있지만, 접근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이 두 공간이 나란히 붙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키하바라라는 동네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결국 우리는 이곳에서 아무것도 뽑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이번 방문을 통해, 아키하바라를 다시 한 겹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체인소맨 굿즈를 손에 넣지는 못했지만, 그걸 찾기 위해 이 공간을 헤매던 시간 자체가 이번 여행의 한 장면으로 또렷하게 남았다.
📌 반다이 남코 가차샵 (namco 秋葉原店)
- 📍 주소: 〒101-0021 Tokyo, Chiyoda City, Sotokanda, 1 Chome−15−9 B1F~5F
- 📞 전화번호: +81570087602
- 🌐 홈페이지: https://bandainamco-am.co.jp/game_center/loc/akihabara/
- 🕒 영업시간: 10:00 –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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