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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기에 남는다 —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난 〈돈키호테〉

연극 〈돈키호테〉는 화려한 무대 장치나 파격적인 연출로 관객을 압도하는 작품은 아니다. 대신 인물과 대사, 그리고 서사의 흐름에 집중하며 고전이 가진 질문을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빠른 전개보다는 여운을, 즉각적인 감동보다는 사유의 시간을 관객에게 남기는 방식이다.

명동에서 만난 스페인 문학의 현재형

2012년 1월, 서울 명동의 겨울밤은 연극 한 편으로 인해 평소와는 다른 온도를 띠고 있었다. 명동예술극장에서 무대에 오른 연극 〈돈키호테〉는 스페인 문학을 대표하는 고전을 원작으로 삼아, 문학과 연극이라는 두 장르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미 여러 차례 다양한 매체로 재해석되어 온 『돈키호테』는 그만큼 익숙한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무대 위에서는 매번 다른 질문을 던지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이 공연 역시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늙은 기사’라는 상징적 장면을 넘어, 돈키호테라는 인물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존재인지를 묻는 방식으로 관객을 마주했다.


‘이순재의 돈키호테’라는 기대, 그리고 또 다른 해석

연극 〈돈키호테〉는 공연 소식이 전해졌을 당시부터 이순재의 출연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한국 연극계에서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배우가 고전 속 노기사를 연기한다는 점은, 작품 자체에 묵직한 신뢰를 더하는 요소였다. 이순재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연극의 방향성과 무게를 예고하는 장치처럼 작용했고, 많은 관객에게 이 작품은 자연스럽게 ‘이순재의 돈키호테’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 공연은 단일 캐스팅이 아닌, 두 개의 팀이 번갈아 무대에 오르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체력 소모가 큰 장기 공연의 특성을 고려한 선택이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하나의 작품 안에서 서로 다른 결의 돈키호테를 만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날 무대에 오른 배우는 한명구였으며, 그의 돈키호테는 보다 담담하고 내면적인 접근을 택했다. 과장된 제스처보다는 인물의 신념과 고집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균열에 초점을 맞춘 연기는, 관객으로 하여금 돈키호테를 ‘웃음의 대상’이 아니라 ‘해석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했다.


원작을 압축하지 않고, 선택한 서사

연극 〈돈키호테〉는 원작 소설 전체를 단순히 요약하거나 대표 장면만 나열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대신 원작 속에 포함된 여러 이야기 가운데, 인간 관계와 감정의 충돌이 두드러지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극을 구성했다. 돈 페르난도, 도로시아, 카데니오, 루신다로 이어지는 관계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들은 각자의 욕망과 선택,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를 통해 인간 군상의 복잡한 단면을 드러낸다.

이러한 서사 구조는 돈키호테와 산초라는 중심 인물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현실과 동떨어진 신념을 좇는 기사와, 그를 따라다니며 현실의 언어를 덧붙이는 동반자. 두 인물은 주변 인물들의 갈등을 관통하며, 고전이 던지는 질문을 현재형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상은 얼마나 비현실적일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비현실성은 과연 무가치한가’라는 질문이 공연 전반에 걸쳐 반복된다.


이해할 수 없지만, 쉽게 외면할 수 없는 인물

돈키호테는 언제나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는 끊임없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시대착오적인 기사도에 집착하며, 현실의 기준으로 보면 실패를 거듭한다. 그러나 연극은 그를 단순히 우스꽝스러운 노인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무대 위의 돈키호테는 분명 엉뚱하고 어리석어 보이지만, 동시에 끝까지 자신의 세계를 포기하지 않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 작품에서 돈키호테는 성공하거나 인정받기 위해 싸우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실패를 감수하면서도 스스로 선택한 세계관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관객은 그의 행동을 전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 일관성만큼은 쉽게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연극은 바로 이 지점에서 고전의 힘을 드러낸다.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인물의 행동을 통해 조용히 반복하기 때문이다.


명동예술극장이라는 공간이 만든 거리와 집중

공연이 열린 명동예술극장은 대학로의 소극장들과는 분명히 다른 성격의 공간이다. 관광과 상업의 중심지에 위치한 이 극장은, 연극을 일상적인 문화 소비라기보다는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경험’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러한 공간적 특성은 공연 관람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학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실험적이고 밀착된 연극과 달리, 명동예술극장에서의 〈돈키호테〉는 보다 정제되고 안정적인 인상을 남긴다. 이는 고전 문학을 원작으로 한 작품의 성격과도 맞닿아 있다. 관객은 무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인물과 이야기를 차분히 따라가게 된다. 이 거리감은 오히려 작품의 메시지를 또렷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많이 보여주기’보다 ‘오래 남기기’를 택한 공연

연극 〈돈키호테〉는 화려한 무대 장치나 파격적인 연출로 관객을 압도하는 작품은 아니다. 대신 인물과 대사, 그리고 서사의 흐름에 집중하며 고전이 가진 질문을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빠른 전개보다는 여운을, 즉각적인 감동보다는 사유의 시간을 관객에게 남기는 방식이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쉽게 정리되지 않는 인상은, 바로 이 선택에서 비롯된다. 풍차를 향해 돌진하던 돈키호테의 모습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관객의 머릿속에서 반복된다. 그것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간의 초상에 가깝다.


고전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연극 〈돈키호테〉는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려 애쓰기보다는, 고전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집중한다. 수백 년 전 쓰인 이야기가 오늘날의 무대에서도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질문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외면할 수 없는 인물,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멈추지 않는 신념. 이 모든 요소는 지금의 관객에게도 여전히 낯설고도 익숙하다.

명동예술극장에서 펼쳐진 이 공연은, 연극이라는 형식이 고전을 어떻게 현재로 불러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였다. 무대는 끝났지만, 돈키호테라는 이름은 관객의 기억 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고전은 그렇게, 또 한 번 현재형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