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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깔아두고,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이긴다 — 보드게임 〈킹덤즈(Kingdoms)〉

이 게임의 묘미는 ‘성’과 ‘카드’의 관계에 있다. 성은 단계가 높을수록 배수가 커진다. 잘만 들어가면 큰 돈을 벌 수 있지만, 반대로 음수 지역에 잘못 놓이면 타격도 크다. 문제는, 판 위의 숫자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 카드가 놓일 때마다 분위기는 계속 변한다.

‘킹덤’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가면, 보통은 머릿속에서 먼저 경계심이 든다. 룰이 복잡하진 않을까, 준비 시간이 길진 않을까, 설명만 듣다가 지치진 않을까. 그런데 〈킹덤즈(Kingdoms)〉는 그런 예상에서 살짝 비켜 서 있는 게임이다. 배경은 중세 판타지고, 성과 왕국이 등장하지만, 게임이 요구하는 건 의외로 단순하다. 계산은 마지막에 하고, 그 전까지는 묵묵히 깔아두는 것. 그리고 그 묵묵함이 테이블 위를 점점 팽팽하게 만든다.

이 게임을 처음 접했을 때도 그랬다. 대학로 근처 카페,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커피를 옆에 두고 게임을 펼쳤다. 보드게임 카페도 아니고, 전문적인 세팅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이 게임은 그런 공간과 잘 어울렸다. 소란스럽지 않고, 대신 서로의 손길과 시선을 유심히 보게 만드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목적은 하나, 가장 돈이 많은 왕국이 된다

킹덤즈의 목표는 복잡하지 않다. 가장 부유한 제국을 만드는 것.

군사 승리도 없고, 문화 트랙도 없다. 3라운드가 끝났을 때 금화를 가장 많이 쥔 사람이 이긴다. 이 단순한 목적 덕분에 게임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빠르게 이해한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돈을 버느냐는 것이다.

보드판은 6×5, 총 30칸. 이 판이 3번 채워지고 나면 게임은 끝난다. 각 라운드마다 플레이어들은 차례대로 행동을 한다. 성을 놓거나, 카드를 놓거나, 라운드 초반에 받은 카드를 사용하는 것. 할 수 있는 행동은 적지만, 어느 타이밍에 무엇을 놓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성은 투자고, 카드는 분위기다

이 게임의 묘미는 ‘성’과 ‘카드’의 관계에 있다. 성은 단계가 높을수록 배수가 커진다. 잘만 들어가면 큰 돈을 벌 수 있지만, 반대로 음수 지역에 잘못 놓이면 타격도 크다. 문제는, 판 위의 숫자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 카드가 놓일 때마다 분위기는 계속 변한다.

그래서 킹덤즈에서는 공격적인 플레이보다, 눈치를 보는 플레이가 더 중요해진다. 지금 당장 좋아 보이는 자리가, 라운드 끝에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날 게임에서도 초반에 과감하게 높은 단계의 성을 깔아두고 흐뭇해하던 플레이어가, 라운드 정산에서 표정이 굳는 장면이 나왔다. 반대로, 조용히 1단계 성만 회수하며 버티던 사람이 후반에 웃는 그림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깔아두는 동안은 조용하고, 정산 때는 잔인하다

킹덤즈는 플레이 중에는 말이 많지 않은 게임이다. 서로 방해를 직접적으로 하는 액션도 없고, 누군가를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순간도 없다. 하지만 라운드가 끝나고 정산이 들어가는 순간, 테이블 위의 공기가 확 달라진다.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하나씩 계산할 때마다 “아…” 하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특히 인상적인 건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다. 1단계 성만 회수할 수 있고, 2~4단계 성은 한 번 놓으면 끝까지 간다. 이 규칙 하나 때문에, 킹덤즈는 가볍게 깔았다가 크게 당하는 게임이 된다. 그날 카페에서도 마지막 라운드 정산이 끝났을 때, 다들 자연스럽게 “이건 다시 한 판 해야지”라는 말이 나왔다.


카페 테이블에 어울리는 중세 판타지

킹덤즈는 보드게임 카페보다, 오히려 일반 카페에서 더 잘 어울리는 게임일지도 모른다. 소리 지를 필요도 없고, 빠른 손놀림도 필요 없다. 대신 상대의 선택을 관찰하고, 판 전체를 조망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커피를 마시며 천천히, 하지만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가는 게임이다.

중세 판타지라는 테마는 외형적인 장치일 뿐, 이 게임의 본질은 투자와 타이밍, 그리고 욕심의 조절에 있다. 그래서 킹덤즈는 한 번 하고 끝나는 게임이 아니다. 한 판을 끝내고 나면, “아까 그 자리에 왜 그걸 놨지?”라는 생각이 꼭 따라온다.


단순한 룰, 오래 남는 기억

〈킹덤즈(Kingdoms)〉는 복잡한 게임은 아니다. 하지만 가볍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룰은 단순하지만, 선택은 무겁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마지막에 한꺼번에 돌아온다. 대학로 근처 카페에서 친구들과 나눴던 그 긴장감은, 지금도 꽤 또렷하다.

조용히 깔아두고, 마지막에 웃는 사람만 남는 게임. 킹덤즈는 그런 게임이다.


🚩 보드게임 〈킹덤즈(Kingdoms)〉

  • 플레이 인원 : 2~4인
  • 플레이 타임 : 약 45~60분
  • 장르 : 전략 / 영역 배치 / 경제
  • 특징 : 단순한 액션, 잔인한 정산, 후반 집중형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