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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보러 왔던 날의 공기 연세대학교에 처음 왔던 이유는 여행이 아니라 시험이었다. 편입시험을 치르기 위해 방문했었고, 영문학과에 지원했었다. 당시에는 캠퍼스를 둘러볼 여유가 거의 없었다. 시험장 위치를 확인하고, 긴장한 채로 교실에 들어가고, 시험이 끝난 뒤 곧장 돌아갔던 하루였다. 결과는 반쯤 성공이었다. 1차 시험에는 합격했지만 마지막 단계였던 서류심사에서 탈락했다. 최종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지 못했던 순간이 꽤 오래 기억에 남아 있었다. ...

일상의 높이에서 보는 서울 연희동은 관광지가 아니다. 유명한 랜드마크가 있는 곳도 아니고, 밤이 되면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도 아니다. 낮에는 조용한 주택가와 카페, 작은 식당들이 이어지고, 밤에는 불이 하나둘 켜진 채로 하루가 자연스럽게 마무리되는 동네다. 그래서인지 이 육교 역시 목적지가 아니라 동선 위에 존재하는 구조물에 가깝다. 계단을 올라 중간쯤에 서면 시선이 바뀐다. 차들이 달리는 높이보다 조금 위, 그렇다고 건물 ...

시장의 현재와 건물의 과거 사이 김명자 굴국밥에서 식사를 마치고 남대문 시장 골목을 따라 걸었다. 남대문은 언제나 같은 리듬을 유지하는 장소다. 관광객, 상인, 포장마차, 택배 박스,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람들의 발걸음. 서울에서도 가장 오래된 상업지역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현재가 강하게 작동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시장의 흐름에서 한 블록만 벗어나면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다. 상점 간판들이 이어지던 거리 사이로 붉은 벽돌 건물 하나가 등장한다. ...

서울에서 겨울을 보낸다는 건 생각보다 단순한 경험이 아니다. 기온만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리듬 자체가 달라진다. 해가 빨리 지고, 퇴근 시간이 되면 거리의 공기가 눈에 띄게 차가워진다. 낮에는 분주하게 움직이던 도시도 밤이 되면 급격히 식어가고, 자연스럽게 실내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이 시기가 되면 특정한 음식이 먼저 떠오른다. 따뜻한 국물, 김이 오르는 그릇, 그리고 몸 안으로 열기가 퍼지는 감각. 한국에서 겨울과 ...

신촌이라는 동네는 이상하게 필요한 일이 생기면 한 번쯤 찾게 된다. 꼭 약속이 있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해결해야 할 때 떠오르는 곳에 가깝다. 병원, 서점, 휴대폰 매장, 그리고 안경점까지 생활과 관련된 가게들이 밀집해 있어서인지 모른다. 오랜만에 콘택트렌즈를 다시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도 자연스럽게 신촌이 먼저 떠올랐다. 사실 렌즈는 한동안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예전에 사용하던 렌즈가 불편했던 기억이 꽤 오래 남아 ...

신촌이라는 동네는 묘하다. 분명 서울 한복판에 있는 번화가인데, 다른 번화가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홍대가 소비의 공간이라면, 신촌은 생활의 공간에 가깝다. 오래된 고시원과 학원 건물, 문구점, 저렴한 밥집들이 섞여 있고, 밤이 늦어질수록 술집보다 불이 켜진 식당이 더 눈에 들어온다. 대학가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이곳은 놀러 오는 사람들이 만드는 동네라기보다, 실제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만들어온 동네다. 그래서 신촌에는 유난히 오래된 식당들이 많다. ...

이번 서울 일정이 끝난 뒤, 가장 또렷하게 남은 감정은 ‘잘 보냈다’는 확신이었다. 공연의 완성도나 이벤트의 구성 같은 평가를 넘어, 이 시간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떻게 채워졌는지를 스스로 납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에필로그는 정리라기보다, 남겨두는 기록에 가깝다. 이번 공연이 남긴 것 — 사람이 이어진 자리 이번 공연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이유 중 하나는, 일본에서 늘 도움을 받던 치카피상이 처음으로 한국을 ...

떠나기 전까지 이어진 마지막 동선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다. 굳이 끝까지 함께 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고, 여기서 헤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선택지는 자연스럽게 배제되었다. “여기까지는 같이 가는 게 좋겠다”는 말이 따로 오가지 않았음에도, 모두 같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며칠 동안 이어진 흐름을 떠올리면, 공항으로 향하는 이 마지막 이동 역시 함께 지나가는 편이 더 ...

떠나기 전, 마음을 데워주는 선택 3일차 일본 팬들이 돌아가는 날이었다. 서울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이제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마지막 아침. 평일 월요일 아침이었기에 다른 한국 팬들은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 있었고, 결국 이 날은 나와 일본 팬들만 남아 서울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우리는 공항으로 바로 향하기 전에, 홍대에서 한 끼를 함께 먹기로 했다. 마지막 식사라는 사실만으로도 메뉴 선택은 ...

하루의 소음이 가라앉은 뒤, 마지막 밤을 정리하는 방식 노래방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밤공기가 제법 가라앉아 있었다. 웃음과 노랫소리로 가득했던 공간을 벗어나자, 그제야 하루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감각이 서서히 밀려왔다. 더 크게 움직이거나, 또 다른 장소를 찾아 나설 에너지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은 자연스러웠다. 모두 함께 앉아 있을 수 있고,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 그렇게 발걸음이 향한 곳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