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보기 위해 움직인 하루였지만, 이상하게도 이 날은 ‘공연 시간’보다 ‘공연 전후의 과정’이 더 길게 기억에 남는 날이기도 했다. 새벽부터 공항으로 이동해 비행기를 타고 도쿄에 도착했고, 나리타에서 우에노로 들어와 숙소에 짐을 맡긴 뒤 곧장 긴시초로 이동해 행사장 위치를 확인하고 식사까지 마친 상태였다. 그 과정만으로도 이미 하루치 에너지를 상당 부분 써버린 느낌이었는데, 정작 메인 이벤트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파르코 1층에서 잠깐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몸은 피곤한데 마음은 이상하게 또렷해지는 감각이 있었다. ‘아,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같은 느낌. 그리고 그 순간부터는, 공연이 아니라 “공연을 향해 수렴해 가는 시간” 자체가 하나의 장면이 되기 시작했다.

오후 5시, 굿즈 판매 시작 — 일본식 ‘매뉴얼 타임’의 칼같음
공연 시작은 18:30이었지만, 굿즈 판매는 17:00부터로 안내되어 있었다. “조금 일찍 열어주면 좋을 텐데”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막상 현장에 서 있으니 일본은 정말 이런 부분에서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나라라는 게 체감됐다. 4시 59분까지는 아무 일도 없다가, 5시 정각이 되는 순간 마치 스위치가 켜지듯 판매가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그게 답답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말하면 ‘규칙이 명확한’ 방식이기도 했다. 그래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에는 애매한 혼란이 적었다. 다만 문제는, 절차가 간단하지 않은데 설명이 일본어로만 쏟아진다는 점이었다.
굿즈 구성은 크게 키링과 CD(당시에는 정식 발매 전이라 예약 구매 형태)였고, 각각 특전이 달랐다. 키링 2개를 사면 멤버들과 하이터치에 참여할 수 있는 티켓이 주어지고, CD를 사면 선입장권과 단체 촬영권이 제공되는 식이었다. 말로만 들으면 단순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예약 구매 → QR 스캔 → 일본어 페이지 → 확인 절차”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구조였다. 혼자였다면 솔직히 상당히 어렵거나, 중간에 포기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날 식사 전 합류한 일본인 팬이 있었고, 그분의 도움 덕분에 ‘설명’이 아니라 ‘실행’이 가능해졌다. 그 순간 느꼈다. 해외 현장에서 가장 큰 변수는 언어가 아니라, 언어가 만들어내는 심리적 압박감이라는 것을.


선입장권마저 ‘가챠’ — 번호표 앞에서 무너지는 멘탈
그리고 여기서부터 일본 특유의 문화가 본격적으로 실감났다. 굿즈 구매가 끝나면 선입장 번호를 받는 구조인데, 한국처럼 “줄 선 순서대로”가 아니라 랜덤 추첨, 즉 가챠 방식이었다. 처음 참여했을 때 가장 허무한 지점이 바로 이거였다. 열심히 시간 맞춰 움직이고, 길 헤매지 않으려고 서둘러 오고,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마지막 순간에 “운”이 모든 걸 결정하는 구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건, 구매를 여러 번 하면 여러 번 뽑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 구조를 현장에서 바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는 처음이다 보니 한 번에 필요한 걸 다 사버렸고, 결과적으로 번호는 한 장만 뽑았다. 그리고 내가 뽑은 번호는 60번. 숫자를 보는 순간, 마음이 한 번 턱 내려앉았다. ‘멀리서 왔으니 그래도…’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60번은 딱 봐도 앞자리와는 거리가 있었다. 한 줄에 10명씩 서면 6열. 작은 행사장이라 해도, “한 걸음의 차이”가 체감되는 공간에서는 이 숫자가 묘하게 크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게 일본식 이벤트의 리듬일지도 모르겠다고. 철저하게 시스템이고, 철저하게 ‘운’의 요소도 섞어두는 방식. 익숙해지면 요령이 생기겠지만, 처음에는 당연히 당황할 수밖에 없다.
다시 대기, 그리고 우연한 재회 — ‘원정대’라는 이상한 공동체
굿즈 구매 자체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대기 시간이 길었을 뿐, 실제 처리 시간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아직 입장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버린 것이다. 우리는 다시 1층 푸드코트로 내려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때부터 현장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었다. 한국에서 온 원정 팬들이 하나둘 합류했고, 인사를 나누고,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오늘 여기까지 온 이유’ 하나만으로 금방 대화가 붙었다. 공연장 앞에서만 발생하는 묘한 공동체 감각이 있다. 평소라면 굳이 말을 섞지 않았을 사람들과도, 그날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 와중에 입구에서 낯익은 얼굴을 마주쳤다. 눈이 마주쳐서 가볍게 인사했는데, 알고 보니 11월 6일 카노우 미유 생일 콘서트 때 공연장 앞에서 인사를 나눴던 일본인 팬이었다. 신기했다. 도쿄라는 큰 도시에서, 이렇게 짧은 기간 안에 같은 사람을 또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게 원정 팬덤 특유의 세계가 아닐까 싶었다. 도시가 크더라도, 마음이 모이는 장소는 결국 정해져 있고, 그곳에서의 만남은 반복된다.

입장 대기…였는데, 이미 입장 완료? — ‘규칙’과 ‘현장’의 간극
안내상으로는 18:30부터 입장 대기 후 순번대로 들어가는 흐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에 맞춰 5층 타워레코드로 올라갔고, 공연 전에 화장실도 다녀왔다. 그런데 돌아오니, 입장 대기 줄이 사라져 있었다. 직원이 시간 전에 먼저 입장을 시켜버린 것이다. 이 순간이 꽤 아쉬웠다. 60번이라는 번호가 아쉬운 건 둘째치고, 원래 흐름대로라면 그래도 그 번호에 맞는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는데, ‘시간 전에 입장’이라는 변수 때문에 더 뒤로 밀리게 된 느낌이었다.
물론 컴플레인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런 감정이 들 때마다, 내 마음 한쪽이 “기분 좋게 보러 왔는데, 굳이 여기서부터 망치지 말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다행히 공간 자체가 작았다. 생각보다 무대와의 거리가 멀지 않았고, 이 정도면 충분히 잘 볼 수 있는 거리였다. 스탠딩이긴 했지만 공연 시간이 길지 않다는 걸 알았기에 체력적으로도 큰 무리는 없었다. ‘완벽한 조건’은 아니었지만, ‘충분한 조건’은 확보된 셈이었다.

오후 7시, 드디어 시작 — 작은 무대가 콘서트가 되는 순간
7시 정각이 되자 멤버들이 등장했고, 그 순간 행사장은 바로 공연장으로 변했다. 미니 라이브를 처음 경험해보는 입장에서는 그 전환이 꽤 강렬했다. 조명이 바뀌고, 사람들의 자세가 바뀌고, 무엇보다 공기의 밀도가 달라졌다. 그리고 시스(SIS/T)는 시작부터 곡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Dancing Queen”으로 문을 열고, “사랑의 배터리(일본어 버전)”, “Stay with me”, “푸른 산호초”, 그리고 마지막을 “사랑의 배터리(한국어 버전)”으로 정리하는 흐름은, ‘일본 현장’과 ‘한국 팬덤’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방식 자체를 세트리스트로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곡 사이사이 멤버들의 멘트가 있었지만 일본어였고, 솔직히 나는 그 내용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그게 아쉬웠다. 다만 이상하게도,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해도 분위기는 충분히 전달됐다. 멤버들이 웃는 타이밍, 관객이 반응하는 포인트, 누군가의 이름이 불릴 때의 온도 같은 것들은 언어가 아니라 장면으로 남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날은 한국 팬들이 많이 왔고, 다들 “첫 이벤트니까 힘을 실어주자”는 마음이 분명했다. 그래서 작은 행사장인데도 응원의 밀도가 높았다. 스탠딩 공간은 크지 않았지만, 체감되는 열기는 콘서트급으로 치솟았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우리가 준비한 응원 포스터였다. 사진과 멘트를 섞어 만든 포스터를 여러 장 준비해 번갈아 흔들었는데, 행사 관계자처럼 보이는 분들이 다가와 “뭘 들고 있는지” 확인하고, 포스터 문구를 보고 피식 웃는 장면이 여러 번 있었다. 작은 행동이었지만,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조금 더 유쾌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었던 것 같다.


‘신인에게 관대하지 않다’는 말, 그날만큼은 예외였던 이유
일본 공연 문화는 신인에게 비교적 냉정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아티스트에게는 엄청난 환호를 보내지만, 막 데뷔한 신인에게는 반응이 절제되는 편이라는 말. 그런데 그날은 분위기가 달랐다. 한국 원정 팬들이 만든 응원 에너지 자체가 현장 분위기를 끌어올렸고, 그 영향이 일본 팬들에게도 전염되는 듯했다. “한국에서 왔냐”는 질문이 오고, 고개를 끄덕이면 따봉을 날리거나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반응이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응원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존중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내 바로 앞에서 공연을 보던 일본 할머니 팬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휴대폰 번역기를 켜서, “신인이라 응원이 필요한 시점인데, 힘이 되는 응원을 해줘서 고맙다”는 문장을 보여주며 인사를 건넸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꽤 오래 남았다. ‘내가 여기까지 와서 뭘 남겼나’라는 질문에, 그 답이 아주 소박한 형태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특전 행사 — 하이터치와 단체 촬영, 그리고 ‘선물 박스’라는 안전 장치
공연이 끝난 뒤에는 특전 행사가 이어졌다. 먼저 하이터치. 멤버들이 일렬로 서 있고, 팬들이 지나가며 손을 맞대는 형태인데, 실제로는 정말 짧은 순간이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이 사람을 오래 붙잡기도 한다. 멤버는 총 4명. 순서대로 아사히 아이, 마코토, 카노우 미유, 타라 리호코가 서 있었고, 팬들은 빠르게 이동하며 인사를 나누는 흐름이었다. 짧지만, “직접 참여했다”는 감각이 남는다. 화면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기억이다.
그 다음은 단체 촬영이었다. 여기서도 일본식 방식이 흥미로웠는데, 주최측 카메라가 아니라 팬의 휴대폰/카메라로 촬영해주는 방식이었다. 내 경우 휴대폰을 RAW로 설정해두었는데, 직원이 옵션을 끄고 일반 사진으로 찍어 조금 아쉬움이 남긴 했다. 하지만 그건 ‘사진 품질’의 문제가 아니라 ‘장면을 남겼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이벤트였다. 나중에 다시 보면 그날의 공기까지 함께 떠오를 사진이니까.
그리고 선물 전달 방식도 한국과 달랐다. 멤버에게 직접 건네는 구조가 아니라, 행사장에 마련된 선물 박스에 넣고, 관계자가 확인 후 전달하는 시스템이었다. 안전을 위한 장치라는 설명을 들었고, 그건 충분히 납득이 갔다. 직접 건네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우리가 1층 꽃집에서 준비한 꽃다발도 그 박스를 통해 넣었고, 다행히 문제 없이 전달되었다. 직접 전달의 손맛은 없었어도, ‘제대로 전달된다’는 확신이 있는 방식이라면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행사가 끝난 뒤의 공허함 — 그리고 여운으로 남는 하루
이렇게 이번 여행의 메인 이벤트였던 미니 라이브는 끝이 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끝나는 순간부터 공허함이 슬쩍 올라왔다. 하루 종일 이 장면 하나를 향해 달려왔는데, 막상 끝나니 ‘그 다음 페이지’가 비어 있는 느낌. 그래서 우리는 쉽게 헤어지지 못했고, 긴시초 근처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마 그건 공연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이 장면을 서로의 말로 정리하면서 ‘기억으로 고정’하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여행이란, 장소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장면을 쌓고, 그 장면을 이야기로 굳히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분명히 여기였다. 긴시초 타워레코드 5층, 생각보다 작은 무대, 그런데 생각보다 큰 열기.
📍 도쿄 긴시초 타워레코드 (TOWER RECORDS 錦糸町パルコ店)
- 주소 : 〒130-0022 Tokyo, Sumida City, Kotobashi, 4 Chome−27−14 錦糸町パルコ 5F
- 전화번호 : +81 3-6659-9381
- 홈페이지 : https://tower.jp/store/kanto/KinshichoParco
- 영업시간 : (매일) 10:30 –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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