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끝나버린 선택에서 시작되는 기록
이번 기록은 공연장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공연을 보기 위해 이미 모든 선택이 끝나버린 상태에서 시작된다. 올패스를 끊었고, 이틀을 비워두었고, 마지막 무대가 어디에 놓일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 선택지는 많지 않았고, 선택 이후에 남은 것은 기다림뿐이었다. 이 프롤로그는 그래서 설렘보다는 긴장에 가깝고, 기대보다는 각오에 가까운 상태에서 시작된다.
공연 일정은 이미 오래전에 확정되어 있었다. 날짜가 달력 위에 찍혀 있는 동안, 나는 그 이틀을 기준으로 생활 리듬을 조정했고, 일정을 비워두었고, 다른 선택들을 자연스럽게 밀어냈다. 공연을 중심으로 하루를 설계하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상태였다. 문제는, 그렇게 준비한 이틀이 효율적인 일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올패스라는 이름의 ‘인질 계약’
이번 공연은 선택지가 명확했다.
카노우 미유의 무대를 가장 좋은 위치에서 보기 위해서는, 올패스를 끊는 것 외에 다른 답이 없었다. 선착순 입장, 지정되지 않은 좌석, 마지막 순서에 배치된 무대. 이 세 가지 조건이 겹치는 순간, 선택은 사실상 강제에 가까워진다. 올패스는 자유를 주는 티켓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시간을 묶어두는 장치였다.
그래서 이 이틀은 처음부터 비효율적이었다.
목적은 분명했지만, 과정은 엉성했다. 공연 하나를 보기 위해 이틀을 묶어야 했고, 그 이틀 중 하루는 ‘아무것도 보지 못할 가능성’을 감수해야 했다. 이 구조를 알면서도 선택을 바꿀 수 없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마지막 무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대를 위해서는, 앞선 모든 시간을 담보로 내놓아야 했다.
이쯤 되면 선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계약에 가깝다.
카노우 미유의 공연을 가장 좋은 자리에서 보기 위해, 5월 24일을 통째로 포기하는 계약. 나는 그 계약서에 이미 서명을 해둔 상태였다.
공연을 보지 못한 날, 망원동을 오가다
5월 24일, 공연은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공연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공연장 앞을 지나쳤고, 입구를 스치듯 바라봤으며, 몇 미터 떨어진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노트북을 펼쳐 일을 하다가도, 일정한 간격으로 공연장 쪽을 바라보게 되는 이상한 하루였다. 공연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바깥을 맴도는 시간. 이 상태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망원동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내 하루는 그 동네의 리듬과 맞지 않았다. 공연장이라는 목적지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나는 그 목적지를 일부러 피하고 있었다. 공연장 앞을 지나치면서도 ‘오늘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야 했다. 이 날의 망원동은 관광지도, 일상의 공간도 아닌, 그저 기다림을 소모하는 장소에 가까웠다.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면서도 마음은 계속 공연장에 가 있었다. 공연을 보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지금 이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감각이 더 컸다. 이 하루는 공연의 일부가 아니라, 공연에 도달하기 위한 전제 조건 같은 것이었다.


다가올수록 커지는 긴장감
공연일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이상할 정도로 예민해졌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미 무언가를 통과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입장 방식, 줄 서는 위치, 계단 동선, 공연 종료 후의 흐름까지. 머릿속에서는 이미 여러 번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긴장감은 설렘과는 조금 달랐다. 기대보다는 준비에 가까웠고, 흥분보다는 집중에 가까웠다.
특히 ‘선착순’이라는 단어는 이틀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공연을 잘 보느냐 못 보느냐가 아니라, 어디까지 먼저 움직일 수 있느냐의 문제로 바뀌는 순간, 공연은 이미 무대 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공연은 계단에서, 줄에서, 그리고 그 줄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24일의 하루는 허무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아무 의미도 없지는 않았다. 이 날의 시간들은 25일을 위한 긴 전주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뒤집힌 이동, 바뀐 역할
이번 이틀이 특별했던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늘 일본으로 향하던 우리가 아니라, 일본에서 사람이 한국으로 왔다는 점이다. 공연을 보기 위해 이동하는 방향이 뒤집혔고, 그에 따라 역할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늘 우리가 낯선 도시에서 길을 찾고, 일정을 맞추고,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쪽이었다면, 이번에는 그 반대였다.
일본에서 공연을 보던 사람이 한국으로 들어왔고, 우리는 그 사람을 맞이하는 위치에 서 있었다. 익숙한 도시, 익숙한 동선, 익숙한 언어 속에서 누군가를 안내하는 입장. 이 작은 변화는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늘 ‘보러 가는 쪽’이었던 우리가, 이번에는 ‘맞이하는 쪽’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이틀의 분위기를 조용히 바꿔놓았다. 공연을 기다리는 태도도, 공연 이후의 시간도, 이전과는 조금 다른 결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 기록이 향하는 곳
그래서 이 글은 공연장 안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무대 위의 첫 곡도, 조명이 켜지는 순간도 아니다. 이 기록은 공연을 보기 위해 이미 모든 선택을 끝낸 상태, 그리고 그 선택의 무게를 하루 동안 감당하고 있는 사람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이 이틀은 ‘무엇을 봤는가’보다 ‘어디까지 기다렸는가’에 더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이 있었기에, 다음 날의 무대는 전혀 다른 밀도로 다가오게 된다. 이 프롤로그는 바로 그 지점을 기록하기 위해 존재한다.
공연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은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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