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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블랙 페퍼 크랩 — 레드하우스(Red House)

싱가포르의 대표 음식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주저 없이 칠리 크랩(Chilli Crab)과 블랙 페퍼 크랩(Black Pepper Crab)을 떠올린다. 두 요리는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해산물 요리이자, 여행자라면 최소 한 번은 경험해봐야 할 ‘통과의례’ 같은 음식으로 여겨진다.

말레이시아 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해산물이 풍부하다. 자연스럽게 해산물을 활용한 요리가 발달했고, 그 정점에 있는 메뉴가 바로 이 크랩 요리들이다. 같은 게 요리이지만, 칠리 크랩과 블랙 페퍼 크랩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싱가포르의 두 얼굴, 칠리 크랩과 블랙 페퍼 크랩

칠리 크랩은 진한 소스가 주인공이다.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소스에 게를 푹 담가내는 방식으로, 소스에 만토우(튀긴 빵)를 찍어 먹는 것까지 포함해 하나의 완성된 세트처럼 즐긴다. 반면 블랙 페퍼 크랩은 훨씬 직관적이다. 소스의 양은 상대적으로 적고, 후추의 향과 열기로 게 자체의 맛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그래서인지 개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뉘는데,

  • 칠리 크랩 → 소스 중심, 화려한 맛
  • 블랙 페퍼 크랩 → 재료 중심, 담백하지만 강렬한 풍미

이번 싱가포르 여행에서는 첫날 점보 씨푸드에서 칠리 크랩을 맛보았고, 여행의 마지막 날에는 블랙 페퍼 크랩으로 여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 선택지가 바로 레드하우스(Red House)였다.


싱가포르 마지막 밤, 로버슨 키의 레드하우스

여행의 마지막 저녁을 보낸 장소는 로버슨 키에 위치한 레드하우스다. 레드하우스는 싱가포르 전통 크랩 요리로 잘 알려진 레스토랑으로, 프랜차이즈 형태로 여러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로버슨 키 지점은 싱가포르 강을 끼고 있어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다만 우리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공교롭게도 리모델링이 진행 중이었다. 외관과 내부 모두 어수선한 느낌이 있었고, ‘마지막 만찬’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분위기가 조금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당은 정상 영업 중이었고, 다행히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시가로 책정되는 크랩,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

레드하우스뿐만 아니라 싱가포르의 대부분 크랩 전문점은 게 요리를 시가(時價)로 판매한다. 즉, 메뉴판에 정확한 가격이 적혀 있지 않고, 그날그날 게의 크기와 원산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그래서 주문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두 가지다.

  1. 1kg당 가격
  2. 게의 원산지

원산지에 따라 가격 차이가 꽤 크기 때문에, 그냥 추천을 받아 주문하면 생각보다 비용이 훌쩍 올라갈 수도 있다. 이 날 우리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선택지를 골랐다.

1kg 기준 SGD 78짜리 블랙 페퍼 크랩

한화로 약 6만 5천 원 정도였고, 성인 2명과 어린이 1명이 함께 먹기에 무리가 없는 수준이었다. 첫날 점보 씨푸드에서의 식사와 비교해보면 훨씬 현실적인 가격이었다.


블랙 페퍼 크랩과 함께한 소박한 조합

메인 요리 외에 사이드 메뉴는 최소한으로 주문했다. 추가로 고른 메뉴는 ‘Gluten Puff With Greens’라는 요리였다. 대나무와 채소, 글루텐 퍼프가 들어간 담백한 요리로, 블랙 페퍼 크랩의 강한 향을 중화해주기에 괜찮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메뉴판에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흰 공깃밥도 주문할 수 있었다. 직원에게 “Steamed Rice”라고 요청하면 SGD 1에 제공된다. 이 흰밥이 의외로 신의 한 수였다. 블랙 페퍼 크랩의 양념을 살짝 묻혀 먹기에 딱 좋았고, 자연스럽게 게딱지에 밥을 비벼 먹는 한국식(?) 조합까지 완성됐다.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던 블랙 페퍼 크랩

개인적으로는 칠리 크랩보다 블랙 페퍼 크랩이 더 인상 깊었다. 후추의 알싸한 향이 강하지만 과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게살의 단맛이 또렷하게 살아 있었다. 소스에 파묻히지 않으니, 게 자체의 식감과 풍미를 훨씬 잘 느낄 수 있었다.

이날의 총 계산 금액은 음식값 SGD 101.6, 여기에 봉사료가 더해져 약 SGD 119.6 정도였다. 한화로 환산하면 약 10만 원 남짓. 여행지의 마지막 저녁 식사로 생각하면 꽤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싱가포르 여행의 끝을 맛으로 정리하다

센토사를 떠나고, 로버슨 키에서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나니 이제 정말 여행이 끝났다는 실감이 났다. 더 둘러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이제는 짐을 챙겨 창이 공항으로 향해야 할 시간이었다.

싱가포르 여행의 시작을 칠리 크랩으로 열고, 끝을 블랙 페퍼 크랩으로 닫은 셈이다. 화려한 관광지와 잘 정돈된 도시의 이미지보다도, 마지막에는 결국 ‘맛’이 가장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밤이었다.


📌 장소 정보 — 레드하우스 로버슨 키

  • 📍 주소: #01-14 The Quayside, 60 Robertson Quay, Singapore 238252
  • 📞 전화번호: +65 6735 7666
  • 🕒 영업시간: (월–금) 15:00–22:30 / (토–일) 11:00–2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