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소프트의 33가지 금지 항목이 말하는 성과의 조건
2013년 1월, SBS 프로그램 〈리더의 조건〉을 통해 소개된 제니퍼소프트는 국내 기업 문화 담론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위치한 이 소프트웨어 기업은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자율·신뢰·성과 중심’의 조직 운영 방식을 전면에 내세우며, 이른바 ‘한국의 구글’이라는 별칭으로 주목을 받았다.
외형적으로 드러난 모습은 파격적이었다. 근무시간 중 기타를 치고, 수영을 하고, 카페에서 일하는 장면은 기존 한국 기업 문화와 정면으로 대비되었다. 하루 7시간 근무, 주 35시간제, 출근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시스템, 가족 전화가 업무보다 우선되는 규칙은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조직 철학 자체를 질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제니퍼소프트가 진정으로 주목받아야 할 이유는 ‘좋은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명문화한 33가지 금지 항목에 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히 규정한 조직
제니퍼소프트의 규칙은 ‘무엇을 하라’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말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구성원의 자율성을 전제로 한 조직에서 반드시 필요한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자유는 방임이 아니며, 신뢰는 기준 없는 관용이 아니라는 점을 이 규칙들은 분명히 한다.
첫째, 시간과 장소를 통제하지 않는다.
“지금 어디예요?”, “언제 와요?”와 같은 질문을 금지하고, “회의 중이니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말조차 지양한다. 근무시간 외 연락을 최소화하고, 퇴근에 눈치를 주지 않으며, 점심시간 역시 각자의 리듬에 맡긴다. 이는 자율 근무의 핵심이 ‘감시의 제거’에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개인의 삶을 조직보다 앞에 둔다.
가족의 전화는 어떤 업무보다 우선하며, 회사를 위해 희생하지 말라는 문장은 이 조직의 철학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야근을 미덕으로 삼지 않고, 식사를 거르지 말 것을 규칙으로 삼는 점 역시 개인의 지속 가능성이 곧 조직의 생산성이라는 관점을 반영한다.
셋째, 강요와 관행을 제거한다.
회식, 출장 기념품, 복장 규정, 형식적인 정장 문화는 모두 불필요한 부담으로 규정된다. 이는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와 관계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다. 자유로운 복장은 개성을 허용하는 차원을 넘어, 불필요한 동질화 압력을 제거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제니퍼 소프트 33가지 금지 항목”
- 통화할 때 “지금 어디예요?”, “뭐 하고 있어요?” “언제 와요?”라고 묻지 마요.
- “지금 회의 중이라서 조금 있다가 전화할게”라고 말하지 마요. 가족의 전화는 그 어떤 업무보다 우선이에요.
- 근무시간 외엔 동료에게 가급적 전화하지 마요. 사랑을 속삭일게 아니라면!
- 퇴근할 때 눈치 보지 마요. 당당하게 퇴근해요.
- 우르르~몰려다니며 같은 시간에 점심 먹지 마요. 시간은 자유롭게, 먹고 싶은 것을 먹어요.
- 비즈니스 정장을 입기 위해 애쓰지 마요. 편하고 자유롭게 마음껏 자신의 개성을 뽐내요.
- 출장 가서 초콜릿 사 오지 마요. 그걸 사기 위해 신경 써야 하는 누군가에겐 부담이니까요.
- 회식을 강요하지 마요. 가고 싶은 사람끼리 자유롭게 놀아요.
- 타인에게 휘둘리지 마요.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예요.
-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요. 도전은 우리의 것. 책임은 회사 대표의 것이에요.
- 대충 하지 마요. 디테일이 중요해요.
- 사무실에서만 일하지 마요. 때로는 카페에서도 일해요.
- 야근하지 마요. 우리에겐 휴식과 가족과 나누는 사랑이 힘이 돼요.
- 너무 일만 하지 마요. 가끔 놀아도 돼요.
- 회의 중에 침묵하지 마요. 침묵은 부정이래요. 항상 말해줘요.
- 농담이라도 상대방을 비웃지 마요. 당신은 웃지만 상대방은 상처받아요.
- 서로에게 반말하지 마요. 서로 항상 존중해요.
- 형식에 얽매이지 마요. 본질에 집중해요.
- 슬금슬금 돌아앉지 마요. 함께 나눈 이야기 속에서 좋은 아이디어와 창의성이 발현돼요.
- 혼자 하지 마요. 함께 하면 힘이 돼요.
- 내 감정을 표현하는 걸 망설이지 마요.
- 다른 구성원이 힘들면 외면하지 마요. 이야기를 들어주고 토닥토닥 감싸줘요.
- 나 혼자 다했다고 자만하지 마요. 우리가 함께 한 일이잖아요.
- 뒤에서 이야기하지 마요. 눈을 맞추고 이야기해요.
- 인상 쓰지 마요. 웃어봐요.
- 정원에서 풀 뽑지 마요. 잡초 뽑기는 회사 대표의 몫이에요.
- 경쟁하지 마요. 서로 협력해요.
- 식사 거르지 마요. 꼭! 챙겨 먹어요.
- 자신의 가능성을 한정 짓고 제한하지 마요. 언제나 오픈 마인드!
- 억지로 하지 마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가슴 뛰는 삶을 살아요.
- 사유와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요. 공동체의 의무예요.
-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요. 계속 고민해요.
- 회사를 위해 희생하지 마요. 당신의 삶이 먼저예요.

협력과 존중을 전제로 한 고성과 조직
제니퍼소프트의 규칙은 개인주의적 자유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강한 협업 규율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회의 중 침묵하지 말 것, 뒤에서 이야기하지 말 것, 농담이라도 상대를 비웃지 말 것, 반말을 금지할 것 등은 모두 심리적 안전감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고, 동료가 힘들 때 외면하지 말라는 항목은 협업을 ‘업무 분담’이 아니라 ‘관계 기반의 공동 작업’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대충 하지 말라”, “디테일이 중요하다”, “혼자 하지 말라”, “경쟁하지 말고 협력하라”는 규칙은 자율적인 환경일수록 결과에 대한 책임과 기준은 오히려 더 엄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되, 그 책임은 대표가 진다는 선언은 도전의 비용을 개인에게 전가하지 않겠다는 조직 차원의 약속이다.
‘자율’은 방임이 아니라 고도의 설계다
제니퍼소프트의 33가지 금지 항목을 종합해 보면, 이 조직이 추구하는 자율은 무규칙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극도로 명확히 함으로써, 구성원이 에너지를 소모해야 할 지점을 최소화한다. 눈치, 경쟁, 정치, 불필요한 의례가 제거된 자리에는 업무의 본질과 성과만이 남는다.
이는 실리콘밸리식 조직, 특히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채택해 온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높은 자율성은 곧 높은 책임을 전제로 하며,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인재에게만 자유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조직은 필연적으로 A급 인재 중심 구조로 수렴한다.
결론: 성과는 문화의 부산물이다
제니퍼소프트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성과는 제도나 복지의 결과가 아니라, 문화의 부산물이다. 자유로운 환경이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에게 자유를 허용하는 구조가 성과를 만든다.
‘한국형 구글’을 표방하는 조직이 단순히 겉모습만을 모방할 경우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니퍼소프트의 33가지 금지 항목은 복지 리스트가 아니라, 고성과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정교한 운영 원칙이다.
결국 조직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것을 허용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정확하게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느냐에서 결정된다. 그리고 그 제거의 기준이 명확할수록, 조직은 더 빠르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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