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쿠라를 기대하면 바로 실망한다”
스지코를 처음 만나는 사람 대부분은 이쿠라를 떠올린다. 반짝반짝한 연어알, 숟가락으로 퍼먹는 이미지, 입 안에서 터지는 감각. 그런데 스지코 앞에 앉는 순간 그 기대는 바로 어긋난다. 알은 붙어 있고, 질감은 뻣뻣하며, 색은 화려하기보다 묘하게 어둡다. 무엇보다 친절하지 않다. 떠먹으라고 존재하는 음식이 아니라, 알아서 잘라 먹으라는 태도다.
그래서 스지코는 첫인상부터 호감형이 아니다. “이게 왜 맛있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스지코는 처음 먹는 사람을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싫으면 말고.”
“알을 한 알씩 먹지 말라는 선언”
스지코의 가장 큰 특징은 연어알이 덩어리째 붙어 있다는 점이다. 이쿠라처럼 알 하나하나가 독립된 상태가 아니라, 막으로 이어진 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서 스지코는 씹는 방식부터 다르다. 터뜨리는 음식이 아니라, 잘라서 씹는 음식이다.
이 질감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다. 알이 터지면서 퍼지는 감각을 기대하면 실망하지만, 대신 스지코에는 묘하게 중독적인 밀도가 있다. 짠맛이 직선적으로 들어오고, 바다 맛이 훨씬 진하다. 덜 다듬어졌다는 느낌이 오히려 매력처럼 작용한다.
“스지코는 밥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스지코는 단독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다. 밥이 없으면 성격이 지나치게 강해진다. 짜고, 묵직하고, 부담스럽다. 그런데 따뜻한 밥 위에 얹는 순간 상황이 달라진다. 밥의 온기와 단맛이 스지코의 짠맛을 정리해주면서, 전체가 갑자기 균형을 갖춘다.
그래서 스지코는 초밥보다 집밥에 어울리는 음식이다. 멋 부릴 필요가 없다. 하얀 밥에 얹고, 김 한 장 곁들이면 끝이다. 일본에서도 스지코는 고급 요리라기보다는, “아는 사람만 찾는 밥반찬”에 가깝다.
“이쿠라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맛”
이쿠라가 감각적인 음식이라면, 스지코는 경험의 음식이다. 처음부터 맛있다고 느끼기보다는, 어느 순간 익숙해지면서 슬그머니 좋아지게 되는 타입이다. 짠맛도 직설적이고, 질감도 투박해서 어린 입맛에는 잘 맞지 않는다.
그래서 스지코는 대체로 나이가 들수록 이해하게 되는 음식이다. 자극적인 맛보다는 밀도 있는 맛을 선호하게 될 때, 스지코의 장점이 드러난다. 말하자면, 이쿠라가 “와”라면, 스지코는 “아…”에 가깝다.

“왜 스지코는 덜 알려졌을까”
스지코는 설명하기 불리한 음식이다. 비주얼도 애매하고, 한 입에 감동을 주지도 않는다. SNS에 올려도 반응이 크지 않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쿠라 뒤에 가려졌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스지코는 오히려 오래 남는다.
유행하지 않는 음식은, 유행이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스지코는 그런 음식이다. 일부러 찾지 않으면 잘 안 보이지만, 한 번 익숙해지면 계속 생각난다.
“스지코는 취향을 숨기지 않는다”
스지코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대체로 반응이 갈린다.
- “그거 너무 짜지 않아?”
- “알 붙어 있는 거 싫던데.”
하지만 스지코는 그런 반응을 개의치 않는다. 스스로를 부드럽게 포장하지도 않고, 누구에게나 맞추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스지코를 좋아하게 되는 순간, 그건 취향이 된다. 타협이 아니라 선택이다.
“그래서 스지코는 오래 가는 음식이다”
스지코는 화려하지 않다. 처음 먹고 감탄하는 음식도 아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밥 위에 스지코를 얹어 먹던 장면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 짠맛, 그 밀도, 그 투박함이 묘하게 그리워진다.
이쿠라가 기억에 남는 음식이라면, 스지코는 생활에 남는 음식이다. 그래서 스지코는 늘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 오래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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