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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 위에 놓인 알프스 — 경의선 책거리 ‘스위스 봄거리 축제’

그래서인지 다른 전시장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실내 전시관이었다면 단순한 홍보 이벤트로 느껴졌겠지만, 야외 산책로에서 진행되니 실제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걸어 이동하며 하나씩 체험하는 방식이 실제 여행의 리듬과 닮아 있었다.

서울에는 독특한 도시 공간들이 몇 군데 있다. 그중에서도 경의선 책거리는 조금 특별한 장소다. 예전에 실제로 기차가 다니던 철길 위를 공원화하면서 만들어진 공간인데, 신촌에서 홍대입구역까지 이어지는 경의선숲길 구간 중에서도 ‘책’을 테마로 꾸며진 거리다.

걷다 보면 일반적인 공원이라기보다는 전시 공간에 더 가깝다. 작은 서점, 전시관, 문화 프로그램이 섞여 있고 산책로와 문화시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구조다. 그래서 목적 없이 걷다가도 어느 순간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한국–스위스 수교 60주년, 도시 위에 열린 외교 행사

2023년은 한국과 스위스가 수교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를 기념해 경의선 책거리에서는 ‘스위스 봄거리 축제’가 한 달 동안 진행되었다. 일반적인 관광 홍보 행사와는 조금 달랐다. 대사관 행사이면서 동시에 시민 참여형 거리 전시 형태였다.

행사의 상징 캐릭터는 무궁화와 에델바이스였다. 한국과 스위스를 대표하는 꽃이 나란히 걷는 형태로 만들어진 캐릭터였는데, 단순한 장식이라기보다 외교 행사 전체를 상징하는 아이콘처럼 활용되고 있었다. 거리 곳곳의 안내판, 포토존, 홍보물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행사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보통 외교 행사는 호텔이나 컨벤션홀에서 열리고 일반 시민이 체감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번 행사는 도시 한복판의 산책로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누군가는 일부러 찾아왔겠지만, 누군가는 그냥 지나가다 우연히 참여하게 된다. 외교가 생활 공간으로 내려온 셈이다.


걷다가 만나는 스위스

거리 전체는 하나의 야외 전시처럼 꾸며져 있었다. 경의선 책거리의 컨테이너형 전시관과 산책로를 활용해 스위스의 도시와 자연을 소개하는 구조였다.

융프라우, 체르마트, 베른 구시가지, 루체른 호수 같은 대표 관광지들이 사진과 설명 패널로 전시되어 있었고, 단순히 설명만 붙여 놓은 형태가 아니라 포토존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다. 관람객은 ‘전시를 보는 사람’이라기보다 ‘풍경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된다.

특히 베른 시가지 시계탑을 재현한 포토존이 인상적이었다. 실제 크기보다 작게 축소된 구조물이었지만, 배경과 조명을 잘 활용해 사진으로 보면 이곳이 서울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장면이 만들어졌다. 해외여행이 다시 재개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단순한 홍보 이상의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스위스 열차 콘셉트 부스

행사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공간은 열차 콘셉트 부스였다. 스위스 여행의 핵심이 기차 여행이라는 점을 활용한 구성이다. 실제 객차 내부를 축소한 형태로 꾸며져 있었고, 승강장처럼 연출된 공간을 통해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부스 안에서는 스위스 풍경 영상이 계속 재생되고 있었다. 창문 모양 스크린을 통해 알프스 풍경이 지나가고, 산악열차가 설원을 통과하는 영상이 이어졌다. 단순한 홍보 영상이 아니라 체험형 전시였다. 공간 자체가 ‘여행 이동 과정’을 재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구조가 흥미로운 점은 관광지보다 이동 경험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스위스 관광의 특징이 목적지가 아니라 이동 과정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실제로 관람객들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도 이 열차 부스였다.


책거리라는 장소가 가진 의미

행사가 경의선 책거리에서 열렸다는 점도 중요했다. 이 공간은 원래 철길이었다. 기차가 사라진 자리 위에 다시 ‘기차 여행’ 콘셉트 전시가 들어온 셈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전시장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실내 전시관이었다면 단순한 홍보 이벤트로 느껴졌겠지만, 야외 산책로에서 진행되니 실제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걸어 이동하며 하나씩 체험하는 방식이 실제 여행의 리듬과 닮아 있었다.

경의선숲길 특유의 분위기도 한몫했다. 카페와 산책로, 공연 공간이 섞여 있는 장소라 전시와 일상이 분리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산책을 하다가, 누군가는 데이트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행사에 참여한다. 외국 문화를 접하는 방식이 ‘방문’이 아니라 ‘경험’이 된다.


한 달 동안 이어진 거리형 축제

스위스 봄거리 축제는 2023년 4월 8일부터 5월 8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진행되었다. 하루짜리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형 전시였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주말 행사 특유의 붐빔이 덜했고, 시간대마다 다른 분위기를 보여줬다. 낮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았고, 저녁에는 산책하던 시민들이 더 많았다. 조명이 켜진 밤에는 포토존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면서 또 다른 전시처럼 느껴졌다.

특히 해 질 무렵이 좋았다. 자연광과 조명이 동시에 존재하는 시간대라 사진 촬영하기에도 가장 적합했고, 전시물의 색감도 가장 또렷하게 드러났다. 야외 전시의 장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관광 홍보 이상의 역할

이 행사는 단순히 스위스 관광지를 소개하는 목적을 넘어선다. 해외여행이 다시 시작되던 시점이었고, 사람들에게 ‘여행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역할을 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여행 계획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여행을 가본 적 없는 사람도 참여한다는 것이다. 실제 경험이 없어도 이미지를 통해 간접 경험을 만든다. 그 과정에서 여행은 정보가 아니라 감정으로 기억된다.

결국 이 축제의 목적은 여행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의외로 단순했다. 멀리 있는 나라를 서울 산책로 위로 옮겨 놓는 것이었다.


도시가 전시장이 되는 순간

경의선 책거리에서의 스위스 봄거리 축제는 전시장 안에서 끝나는 행사가 아니었다. 산책로를 따라 이동하며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전시를 보러 온 사람과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구분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행사는 기억 방식도 조금 다르다. 특정 부스를 본 기억보다 ‘걷다가 만난 장면’으로 남는다. 목적지로 찾아간 전시보다 우연히 마주친 풍경이 더 오래 남는 것과 비슷하다.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서, 잠시 다른 나라의 분위기를 경험했던 시간이었다. 실제로 스위스에 간 것은 아니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 단계의 감정은 충분히 만들어졌다. 아마도 이런 형태의 행사가 도시에서 가지는 의미는 바로 그 지점일 것이다.


📌 경의선 책거리 스위스 봄거리 축제

  • 📍 주소 :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35길 50-4
  • ☎️ 전화번호 : 02-324-6200
  • 🕒 운영시간 : (화–일) 11:00 – 20:00 / 월요일 휴무
  • 🌐 홈페이지 : http://gbook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