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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일본 도쿄 여행 — 프롤로그 ‘첫 일본 여행’

계획이 없었던 것도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어디를 꼭 가야 한다는 부담이 없었기에 날씨와 컨디션에 따라 움직였다. 마음이 가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길을 걷다가 흥미가 생기면 들어가고 배가 고프면 근처 가게에 들어가 식사를 했다. 효율적인 여행은 아니었지만 대신 도시를 관찰하는 시간은 충분했다. 이 여행은 관광 일정을 수행하는 여행이라기보다는 한 도시를 처음으로 경험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예정에 없던 여행의 시작

돌이켜보면, 이 여행은 오래 준비했던 여행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계획도 없었고, 일정도 없었고, 심지어 “일본에 가야겠다”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던 시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은 내게 멀리 있는 나라였다.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크게 접점이 없는 곳이었다. 일본 문화에 특별히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여행 후보지로 고민했던 적도 없었다. 언젠가는 가겠지 정도의 막연한 생각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계기로 여행이 시작되었다. 당시 형이 도쿄로 출장을 가게 되었고 며칠간 현지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안부 연락을 주고받던 중 형이 가볍게 한마디를 꺼냈다. “혹시 시간 되면 와볼래?” 처음에는 농담처럼 들렸다. 해외여행이라는 것은 보통 몇 달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항공권과 숙소를 준비해야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제안은 생각보다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숙소 걱정이 없었고 일정에도 크게 구속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움직였다. 평소 같았으면 다음을 기약했을 이야기였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냥 지금이 아니면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가 되어 있어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떠나고 나서 준비하게 될 여행이라는 느낌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출발

결정을 내리고 나서는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항공권을 알아보고 급하게 여권을 챙기고 필요한 것들을 최소한으로 준비했다. 여행 계획이라고 할 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가이드북도 제대로 보지 않았고 어디를 가야 하는지도 정하지 않았다. 그저 도쿄라는 도시가 어떤 곳인지 직접 걸어보면 알게 되겠지라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무모했지만, 동시에 그래서 가능했던 여행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여행을 갑자기 결정한 대가를 가장 먼저 실감한 것은 항공권이었다. 출발일이 임박한 시점에서 표를 구하다 보니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고, 결국 인천에서 나리타로 가는 제주항공 항공편을 약 50만 원에 구입하게 되었다. 저가항공이었음에도 가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지금 기준으로도 비싼 편이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꽤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그럼에도 이미 마음은 떠나기로 기울어 있었고, 그 비용 자체가 오히려 ‘정말 가게 되는구나’라는 현실감을 만들어 주었다.

당시의 나는 해외여행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당연하게 믿고 있었다. 영어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은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국제도시이고 관광객이 많은 나라니까 기본적인 영어는 통할 것이라 예상했다. 메뉴를 주문하고 길을 묻고 필요한 상황 정도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일본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무너졌다.


공항에서 처음 느낀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당황했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안내 표지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사람과 직접 대화를 해야 하는 순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영어로 질문을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일본어였고 다시 영어로 물어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상대방도 당황하고 나도 당황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분명 간단한 내용이었는데도 전달되지 않는 경험은 생각보다 크게 크게 느껴졌다.

특히 예상과 달랐던 점은 공항 직원이라면 기본적인 영어는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일본어로만 응대를 했고, 내가 영어로 질문을 하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잠깐 정적이 흐르는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어려운 내용도 아니었는데, 그 당시에는 길 하나 묻는 것조차 쉽지 않게 느껴졌다.

다행히 공항에서 영어가 유창한 직원 한 분을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흑인 직원이었는데, 그분에게 상황을 설명하자마자 대화가 바로 통했다. 그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고, 그동안 쌓여 있던 긴장이 한 번에 풀리는 느낌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 직원에게 설명을 듣는 동안 ‘아, 이제 살았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는 점이다. 낯선 나라에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심리적으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해외여행에서 언어는 단순히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안정과 직결된다는 것을. 길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보다 물어볼 수 있느냐 없느냐가 훨씬 큰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타국에 들어와 있다는 감각이 그 순간 또렷해졌고, 공항에서 도심으로 이동하는 과정 자체가 작은 모험처럼 느껴졌다. 익숙하지 않은 문자와 발음 속에서 스스로가 여행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관광이 아니라 ‘경험’이 된 여행

그래서 이 여행은 관광지의 기억보다 감정의 기억이 먼저 남았다. 어디를 갔는지보다 어떻게 느꼈는지가 더 선명했다. 도쿄는 처음 마주하는 도시였고 동시에 내가 익숙하게 살아온 환경과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공간이었다. 거리의 질서, 대중교통의 정시성, 조용한 실내 분위기, 작은 상점의 구조 같은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별한 관광지를 가지 않아도 걷는 것만으로 충분히 새로운 경험이 되는 여행이었다.

계획이 없었던 것도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어디를 꼭 가야 한다는 부담이 없었기에 날씨와 컨디션에 따라 움직였다. 마음이 가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길을 걷다가 흥미가 생기면 들어가고 배가 고프면 근처 가게에 들어가 식사를 했다. 효율적인 여행은 아니었지만 대신 도시를 관찰하는 시간은 충분했다. 이 여행은 관광 일정을 수행하는 여행이라기보다는 한 도시를 처음으로 경험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이후 여행을 바꾸게 된 출발점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4박 5일의 시간은 이후의 여행 방식 자체를 바꿔놓게 된다. 여행은 준비가 끝나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떠나면서 시작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여러 번 일본을 방문하게 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여행의 기준점은 바로 이 첫 번째 도쿄 여행이었다.

이제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그날의 아침부터, 도쿄에서의 첫 순간을 기록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