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26일, 살롱 문보우
하루의 끝을 맡긴 이름, 카노우 미유
서울 합정에 위치한 살롱 문보우는 공연장이라기보다, 음악을 가까이서 마주하기 위한 방에 더 가까운 공간이다. 약 80명 남짓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 무대와 객석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구조. 이곳에서는 무대 위의 작은 표정 변화나 호흡 하나까지도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전달된다. 큰 소리나 과장된 연출보다, 누가 어떤 태도로 노래하는지가 훨씬 또렷하게 드러나는 공간이다.
2025년 5월, 이 작은 공연장에서 이틀에 걸친 릴레이 콘서트가 진행되었다.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각자의 테마와 색을 들고 무대에 올랐고, 공연은 하루에 여러 회차로 나뉘어 이어졌다. 그러나 흐름은 분명했다. 마지막에 배치된 무대는 카노우 미유였다. 하루의 끝, 그리고 이틀간의 흐름을 마무리하는 자리.
공연 프로그램에서 마지막 순서라는 것은 단순한 배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관객의 체력, 집중도, 감정의 밀도가 가장 많이 소모된 상태에서 무대에 오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만큼 공연의 하이라이트로 기능하기를 기대받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 날 미유의 무대는, 바로 그 위치에 놓여 있었다.
앞자리를 향한 선택들
이 공연의 티켓 구조는 단순하지 않았다. 좌석이 사전에 지정되는 방식이 아니었고, 현장에서 줄을 서서 입장하는 구조였다. 올패스, 데이패스, 일반 티켓 순으로 입장이 이루어졌고, 앞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올패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흥미로운 장면은 공연 시작 전부터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다. 미유의 무대를 앞자리에서 보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올패스를 구매한 관객이 있었고, 실제로 그 직전에 진행되던 다른 공연에 입장하지 않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단 두 명 정도였지만, 그 선택은 분명했다. 이들은 공연을 ‘연속된 프로그램’으로 소비하기보다, 카노우 미유라는 한 사람을 보기 위해 이 공간에 와 있었다.
이 장면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신호였다. 미유의 무대가 단순한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라, 목적지가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에 가까웠다.
MC로 다시 만난 마코토
이날 미유의 공연에서 MC는 마코토가 맡았다. Q&A와 밸런스 게임으로 구성된 짧은 토크 섹션에서만 등장했지만, 그 존재감은 분명했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자유롭게 오가는 언어 감각, 그리고 미유와 같은 팀 시스(SIS/T)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호흡.
마코토의 진행은 과하지 않았다. 질문을 던지고, 흐름을 정리하고, 다시 무대를 미유에게 돌려주는 역할에 충실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MC가 무대의 주도권을 자신에게 가져오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유의 리듬을 읽고, 그녀가 다음 곡으로 넘어가기 좋은 타이밍을 만들어주는 방식. 이는 단순한 사회자의 역할이 아니라, 무대를 함께 이해하는 사람의 태도에 가까웠다.

세트리스트가 말해주는 것
— ‘한국’이라는 무대를 전제로 한 선택들
이날 카노우 미유의 세트리스트는 다음과 같았다.
- Over Drive
- 사랑을 전하고 싶다든가
- Don’t you see
- 유리색의 지구
- Every Heart (BoA)
- 문라이트 전설
- 외로운 열대어 (with 마코토)
- 로맨틱을 줄게요
- 내가 아줌마가 되어도
- 나도 여자랍니다
- 귀여워서 미안해
이 구성은 우연의 나열이라기보다는, 매우 명확한 방향성을 가진 배열에 가까웠다.
첫 두 곡 「Over Drive」와 「사랑을 전하고 싶다든가」는, 미유가 한국 무대에서 자신을 각인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곡들이다. 한일가왕전과 이후의 무대를 통해 이미 여러 차례 검증된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단순히 반응이 좋았던 곡이라서가 아니라, ‘이 사람이 어떤 결의 무대를 만드는가’를 가장 빠르게 설명할 수 있는 선택들이었다.
이 두 곡에서 미유는 힘을 과시하지 않는다. 대신 공간을 넓게 사용하며, 관객의 시선을 급하게 끌어당기지 않고 천천히 모은다. 한국 무대에서의 첫인상을 ‘잘 부르는 가수’보다 ‘안정적으로 무대를 운영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기겠다는 판단이 읽힌다. 시작부터 감정을 극단으로 밀어붙이지 않는 태도는, 이 공연이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이어진 「Don’t you see」와 「유리색의 지구」는 결이 조금 다르다. 이 두 곡은 일본 대중음악사에서 이미 설명이 끝난, 말 그대로 ‘유명한 노래’들이다. 한국 공연에서 굳이 이 곡들을 선택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는 관객에게 친숙함을 주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일본 음악이 가진 감정의 결을 한국 무대에 소개하고 싶다는 의지에 가까워 보였다.
특히 「Don’t you see」는 ZARD의 대표곡으로, 일본 대중음악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노래다. 이 곡을 한국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선이 언어를 넘어 전달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는 선택이다. 미유는 이 곡을 ‘일본 노래를 부른다’는 태도로 접근하지 않았다. 대신, 곡이 가진 흐름과 멜로디의 힘을 믿고, 불필요한 설명 없이 노래로 밀어붙였다. 결과적으로 이 곡은 낯설기보다 차분하게 스며드는 형태로 작동했다.
중반부에 배치된 「Every Heart (BoA)」와 「문라이트 전설」은 한국 공연이라는 맥락을 보다 직접적으로 의식한 선택이었다. BoA의 「Every Heart」는 한일 양국 모두에게 익숙한 곡이지만, 동시에 ‘한국에서 시작해 일본으로 확장된 서사’를 상징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 곡을 부르는 미유의 위치 역시 그 서사와 겹친다. 일본에서 활동하며, 한국 무대에 서 있는 사람. 이 곡은 그런 그녀의 현재 위치를 설명하는 데 지나치게 정확했다.
「문라이트 전설」 역시 단순한 향수 자극용 선곡은 아니었다. 이 곡이 가진 밝고 명확한 캐릭터는, 앞선 곡들에서 쌓아온 밀도를 잠시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 공연의 흐름을 환기시키면서도, 관객과의 거리를 한 단계 더 좁히는 장치처럼 기능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세트리스트는 더욱 분명하게 ‘한국’을 향해 기울어진다.
「로맨틱을 줄게요」, 「내가 아줌마가 되어도」, 「귀여워서 미안해」는 모두 한일톱텐쇼를 통해 이미 한 차례 검증된 곡들이다. 단순한 커버를 넘어, ‘이 사람이 이 곡을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드는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레퍼토리들이다. 이 곡들을 다시 꺼내 들었다는 것은,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다는 이미 신뢰를 얻은 선택을 정확한 위치에 배치하겠다는 판단으로 읽힌다.
그리고 이 흐름의 중심에 놓인 곡이 바로 「나도 여자랍니다」였다. 이 곡은 한국 대중가요 중에서도 비교적 오래된 곡에 속하며, 정서와 발화 방식이 분명한 노래다. 미유는 이 곡을 한국어로 불렀다. 이는 이 노래가 가진 언어적 리듬을 존중하겠다는 태도에 가까웠다. 이 지점에서 공연은 ‘외국 가수의 무대’라는 감각에서 벗어나,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공연자의 무대로 이동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날의 세트리스트는 한국에서 이미 의미를 획득한 곡들, 일본의 정서를 소개하는 곡들, 그리고 양국을 잇는 상징적인 레퍼토리가 층위별로 배치된 구조였다. 무작위적이지 않았고, 과욕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 공연이 ‘처음 보여주는 무대’가 아니라, ‘이후를 전제로 한 무대’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카노우 미유는 이 날, 새로운 모습을 증명하기보다는 이미 자신이 쌓아온 선택들을 한 번 더 정리해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정리는, 작은 공연장이라는 조건 속에서 오히려 더 또렷하게 읽혔다.


듀엣, 그리고 관계의 결
공연 후반부, 「외로운 열대어」에서 마코토가 다시 무대에 올랐다. 이 듀엣은 단순한 이벤트성 무대가 아니었다. 두 사람이 트롯 걸즈 재팬이라는 경쟁의 장에서 서로를 의식하며 서 있었고, 이후 시스(SIS/T)라는 이름 아래 같은 팀으로 이어져 왔다는 맥락을 알고 있는 관객에게는, 이 장면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읽혔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겹치기보다는 분리되어 있었다. 누군가를 받쳐주는 구조도, 한쪽이 중심이 되는 구성도 아니었다. 서로의 빈 공간을 자연스럽게 남겨두고, 그 사이를 침범하지 않는 방식. 같은 선상에 서되, 다른 결로 노래하는 관계였다. 이 듀엣에서 중요한 것은 완벽한 호흡이나 화려한 하모니가 아니라,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 거리감이었다.
이 장면은 카노우 미유가 팀 안에서도 자신의 색을 잃지 않는 방식으로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경쟁을 거쳐온 관계이기에 가능한 균형, 그리고 함께 서되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는 태도. 이 곡이 공연의 후반부에 배치되었다는 점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 선택처럼 보였다.
마지막 곡, 그리고 남은 것
마지막 곡 「귀여워서 미안해」가 끝났을 때, 공연장은 박수로 채워졌다. 이 박수는 폭발적이라기보다는 길게 이어졌다. 공연이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이자, 이 시간이 충분히 납득 가능했다는 확인처럼 들렸다. 소리를 높여 환호하기보다는, 손을 오래 움직이며 응답하는 방식. 살롱 문보우라는 공간과, 이 날의 무드에 어울리는 마무리였다.
이 날의 무대는 카노우 미유에게 있어 새로운 도전의 자리는 아니었다. 대신, 지금의 자신이 어떤 단계에 와 있는지를 차분히 보여주는 자리였다. 앞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선택이 이루어졌고, 마지막 순서라는 부담을 견디며 무대를 완성했고, 언어와 장르를 넘나드는 선곡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았다.
미유는 이 날, 무대 위에서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았다. 이미 그 과정을 지나온 사람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정확한 위치에 놓았다. 첫 곡에서 공간을 넓게 쓰는 방식, 중반부에서 감정을 눌러두는 선택, 후반부에서 다시 관객과 호흡을 나누는 흐름까지. 이 모든 선택은 ‘잘 보이기 위한 공연’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이 가장 안정적으로 설 수 있는 방식에 가까웠다.
이 작은 공연장은 하루의 끝까지 관객을 붙잡고 있었다. 과도한 연출이나 예상 밖의 장치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무대 위에 선 사람이 자신의 몫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굿즈, 폴라로이드, 그리고 현장의 온도
공연장 한편에서는 굿즈 판매와 폴라로이드 촬영이 진행되었다. 뱃지는 가챠 형태로 판매되었고, 멤버 개인 폴라로이드 사진은 1장당 15,000원, 함께 촬영하는 폴라로이드 촬영권은 25,000원이었다. 모두 선착순으로 진행되었고, 줄은 빠르게 길어졌다.
이 과정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서는 관객들도 있었다. 운영 측의 통제가 완벽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고, 모두의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소규모 공연장이 가진 현실적인 한계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공연 자체의 밀도가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진 촬영은 모든 공연이 끝난 뒤에 이루어졌다. 이 결정은 결과적으로 공연의 집중도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무대 위의 미유는 ‘찍히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노래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카메라를 의식한 순간보다, 관객과 호흡하는 시간이 먼저였다.
작은 무대가 남긴 분명한 인상
살롱 문보우에서의 이 날은 대형 콘서트도, 화려한 쇼케이스도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무대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순서에 배치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 부담을 과장 없이 견뎌냈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카노우 미유는 이 날, 무대 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다. 대신, 이미 쌓아온 선택과 태도를 조용히 정리했다. 그리고 그 정리는, 큰 소리보다 오래 남는 종류의 것이었다.
이런 무대들이 쌓일수록, 그녀는 더 이상 ‘가능성을 보여주는 가수’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공연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변화는 빠르지 않지만, 분명했고, 무엇보다 흔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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