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신주쿠 골목 안에서 점심을 마치고 나니, 다음 목적지는 자연스럽게 시부야로 정해졌다. 도쿄를 자주 오다 보면 ‘어디를 갈지’보다 ‘어떻게 이동할지’를 먼저 고민하게 된다. 신주쿠와 시부야는 지도상으로 보면 굉장히 가까운 지역이다. JR 야마노테선을 타면 몇 정거장밖에 되지 않고, 대부분의 여행자는 아무 고민 없이 전철을 선택한다. 문제는 우리가 있던 위치였다. 식당이 전철역에서 애매하게 떨어져 있었고, 다시 역으로 걸어가 지하로 내려가 개찰구를 통과하고 환승 동선을 따라 움직이기에는 생각보다 번거로운 상황이었다. 그때 자연스럽게 떠오른 선택지가 ‘버스’였다.
도쿄에서 버스를 탄다는 선택은 관광객 입장에서는 의외로 낯설다. 도쿄는 철도망이 워낙 촘촘해서 굳이 버스를 탈 필요가 없는 도시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 역시 도쿄를 여러 번 방문하면서 전철과 지하철만으로 이동을 해결해 왔다. 하지만 지도를 조금 넓게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역과 역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우는 교통수단은 오히려 버스다. 특히 히가시신주쿠에서 하라주쿠·시부야 방향으로 이동하는 경우에는, 전철보다 지상 이동이 더 효율적인 구간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철이 아닌 버스를 선택했다.

히가시신주쿠에서 시부야 GR 스페이스로
이번 이동의 첫 목적지는 시부야에 있는 ‘GR 스페이스’였다. 리코(Ricoh)의 GR 시리즈 카메라를 전시하고 판매하는 플래그십 공간으로, 최근 발표된 GR4의 실물을 한 번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장비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여행 자체의 기록 방식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런 공간은 여행 일정 안에서도 나름 중요한 방문지가 된다.
문제는 위치였다. GR 스페이스는 시부야역 바로 앞이 아니라 하라주쿠와 시부야의 중간쯤 되는 애매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전철로 이동하면 역에서 다시 꽤 걸어야 하고, 환승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시간이 늘어날 수 있었다. 반면 버스는 목적지 근처까지 거의 직선으로 이동한다. 지도 위의 선을 그대로 따라가는 이동, 그 점이 이번 선택의 결정적인 이유였다.


도쿄에서 처음 타본 시내버스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니 그제야 “아, 내가 도쿄에서 버스를 처음 타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토에서는 버스를 이용한 적이 있었지만 도쿄 도심에서는 늘 전철만 이용했기 때문이다. 여행을 여러 번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경험하지 않은 방식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새롭게 느껴졌다.
버스가 도착하자 이용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교통카드인 스이카(Suica)를 단말기에 태그하고 탑승하면 끝이었다. 복잡한 티켓 구매 과정도 없고, 환승 고민도 없다. 교토에서는 뒷문으로 타고 앞문으로 내리는 구조였던 기억이 있는데, 도쿄 버스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앞문 승차·뒷문 하차 구조였다. 덕분에 처음 이용임에도 크게 헤매지 않았다.
차 안 분위기도 인상적이었다. 전철과 달리 좌석이 중심이라 이동이 훨씬 느긋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지하가 아니라 지상이라는 점이 다르다. 전철은 이동을 위한 공간이지만, 버스는 이동과 동시에 ‘구경’이 가능한 공간이었다. 창밖으로 신주쿠의 거리 풍경이 흘러갔다. 좁은 골목, 작은 상점, 주택가, 그리고 갑자기 나타나는 대로. 전철로 이동하면 절대 보지 못하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같은 도시인데도 전혀 다른 도시를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지하가 아닌 ‘거리’를 지나가는 이동
버스의 가장 큰 장점은 이동 과정이 끊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전철은 승강장—플랫폼—차량—환승—계단이라는 구간 단위의 이동이 반복된다. 반면 버스는 한 번 앉으면 목적지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도시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는 경험이다. 신주쿠의 빌딩 밀도가 조금씩 낮아지고, 길의 폭이 달라지고, 사람들의 옷차림과 거리 분위기가 변하는 과정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내릴 때도 간단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하차 버튼을 누르고, 정류장에 정차한 뒤 천천히 내려도 충분했다. 한국에서는 미리 일어나 출입문 앞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는데, 여기서는 그런 분위기가 거의 없었다. 정차 후에도 승객들이 서두르지 않고 차례대로 움직였다. 그 여유가 버스 이동을 더 편하게 느끼게 했다.

목적지 앞에서 끝난 첫 버스 경험
버스에서 내려 몇 걸음 걸으니 바로 목적지가 나타났다. 역에서 내려 10~15분씩 걸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 도쿄에서, 이렇게 ‘내리자마자 도착’하는 경험은 꽤 만족스러웠다. 전철이 도시의 뼈대라면, 버스는 도시의 피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객이 아닌 생활자의 동선으로 이동했을 때 느껴지는 현실감이 분명히 있었다.
이번 도쿄 여행에서 가장 새로웠던 경험 중 하나는 바로 이 이동이었다. 유명 관광지나 식당보다, 이동 방식 하나가 여행의 감각을 바꿔버리는 순간이 있다. 전철로만 움직였다면 그저 ‘신주쿠에서 시부야로 이동했다’로 끝났을 하루가, 버스를 탔다는 이유만으로 하나의 장면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날의 도쿄는, 지도 위의 점과 점이 아니라 하나의 이어진 거리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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