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여행 셋째 날, 에비스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나오니 오후 시간이 꽤 지나 있었다. 일정표로 보면 아직 하루가 남아 있었지만, 몸은 이미 많은 장면을 받아들인 상태였다. 첫날과 둘째 날은 가능한 많은 장소를 보는 데 집중했다면, 이 날부터는 조금 다른 여행이 시작된 느낌이었다. 어디를 더 가야 한다기보다는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느냐’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시부야로 이동했다. 도쿄를 대표하는 번화가이기도 하고, 여행을 왔다면 한 번쯤은 들러야 할 장소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스크린과 영상으로 너무 많이 보았던 풍경이었고, 이미 여러 번 비슷한 거리들을 지나왔기 때문인지 새로움은 생각보다 오래 가지 않았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잠시 거리를 걷다 보니 관광지를 보고 있다는 느낌보다 단순히 사람이 많은 도시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감각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른 장소를 찾게 되었고, 지도에서 눈에 들어온 곳이 바로 메이지 신궁이었다.


시부야에서 하라주쿠로, 걷는 이동이 여행이 되던 순간
하라주쿠역 근처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 의외였다. 번화가와 신사가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것이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전철을 타면 한 정거장이었지만, 날씨가 좋아 굳이 타지 않고 걸어가 보기로 했다. 여행 셋째 날쯤 되면 이동 자체가 하나의 일정이 된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어떤 장면을 만나느냐가 여행의 기억을 만든다.
하라주쿠역 근처까지 걸어가는 동안 도쿄의 일상적인 풍경을 천천히 볼 수 있었다. 특별한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거리의 표정은 도시를 이해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였고, 상점들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고, 신호등과 간판들이 반복되며 전형적인 대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메이지 신궁 입구로 들어가는 순간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졌다.


도리이를 지나며 느껴지는 ‘도시와 다른 공간’
입구의 거대한 도리이를 통과하는 순간 소음이 확연히 줄어든다. 자동차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멀어지고, 사람들의 말소리도 자연스럽게 작아진다. 누구도 조용히 하라고 말하지 않는데도 모두가 목소리를 낮춘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숲이었다. 신궁으로 이어지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고, 양쪽으로 높게 자란 나무들이 이어져 있었다. 바로 옆이 도쿄 한복판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공기가 달라졌다. 관광지라기보다는 도시 안에 남겨진 하나의 자연 공간에 들어온 느낌에 가까웠다.
걸음을 옮길수록 번화가의 기억은 조금씩 멀어졌고,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걸음을 늦추고 있었다. 급하게 이동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목적지보다 과정이 더 중요해 보였다.


메이지 덴노가 봉안된 장소라는 사실이 주는 감정
메이지 신궁은 메이지 덴노와 쇼켄 황후의 신위를 모신 신사다. 메이지 덴노는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인물로 알려져 있고, 교과서에서 ‘메이지 유신’이라는 사건으로 익숙하게 접했던 존재이기도 하다. 1912년 사망 이후 1920년에 신궁이 건립되었고, 전쟁 중 공습으로 파괴되었다가 1958년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 장소는 단순히 역사적 인물을 기리는 공간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메이지라는 이름은 자연스럽게 조선이 일본에 의해 통치되던 시기를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방문하기 전에는 단순한 관광지로 생각했지만, 막상 그 사실을 떠올리자 감정이 복잡해졌다.
걷는 동안 계속해서 생각이 이어졌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감정은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이곳에서 다시 느끼게 되었다. 어떤 장소는 풍경으로 기억되고, 어떤 장소는 감정으로 남는다. 메이지 신궁은 후자에 가까웠다.


술통과 에마, 그리고 신사 특유의 풍경
신궁으로 향하는 길 한쪽에는 사케 통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반대편에는 와인 통이 놓여 있었다. 사케 통에는 각 양조장의 문양이 새겨져 있어 하나의 전시물처럼 보였고, 와인 통은 비교적 단순한 모습이었다. 메이지 덴노가 와인을 좋아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외국에서 기증된 것이라고 한다. 현재는 모두 비어 있는 통이지만, 상징적인 의미로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경내에 들어가면 에마를 걸어둔 장소도 볼 수 있다. 에마는 소원을 적어 걸어두는 나무판으로, 원래는 신에게 말을 바친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말을 바칠 수 없게 되면서 말 그림을 대신 걸기 시작했고, 이후 다양한 형태로 변화했다.
관광객들도 많았지만 참배를 하는 일본인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손을 씻고, 고개를 숙이고, 박수를 치고 기도를 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곳은 관광지이면서 동시에 여전히 종교적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 느껴졌다.




여행에서 반드시 즐겁기만 할 필요는 없다
메이지 신궁은 분명 유명한 관광지이고, 도쿄 여행에서 한 번쯤 방문해볼 만한 장소이기도 하다. 도시 한복판에서 이렇게 큰 숲과 같은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풍경보다 감정이 더 오래 남은 장소였다. 여행은 단순히 사진을 찍고 유명한 장소를 확인하는 과정만은 아니다. 어떤 장소는 아름다워서 기억에 남고, 어떤 장소는 생각하게 만들어서 기억에 남는다. 메이지 신궁은 후자에 가까웠다.
도쿄의 번화가 바로 옆에서 전혀 다른 시간을 경험했던 장소, 그리고 관광지 이상의 감정을 남겼던 공간으로 기억된다.
📌 메이지 신궁
- 📍 주소 : 1-1 Yoyogikamizonocho, Shibuya, Tokyo 151-8557, Japan
- 📞 전화번호 : +81 3-3379-5511
- 🌐 홈페이지 : http://www.meijijingu.or.jp
- 🕒 운영시간 : 6:20 –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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