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기념품을 사는 시점은 묘하게 비슷하다. 여행 초반에는 잘 안 산다. 아직 일정이 많이 남아 있고, 더 좋은 걸 발견할 것 같고, 괜히 짐만 늘어날 것 같기 때문이다. 대신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되면 갑자기 마음이 바뀐다. 이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현실이 되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무언가를 하나는 남겨야 할 것 같은 기분이 생긴다. 이 머그컵도 딱 그런 타이밍에 샀던 물건이다.
2024년 11월, 도쿄와 오사카를 함께 다녀온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 오사카였다. 그리고 귀국 날 마지막 아침에 들렀던 곳이 도톤보리였다. 그곳에서 발견한 게 바로 이 스타벅스 기념 머그였다.
가격은 대략 5,500엔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여행 중이라면 한 번쯤 고민할 금액이다.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충동구매라고 하기엔 의미가 붙는 물건. 결국 이런 종류의 기념품은 실용성으로 사는 게 아니라, 타이밍으로 사게 된다.
컵이지만 컵이 아닌 물건
겉으로 보면 머그컵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머그컵이 아니다. 위쪽에 달려 있는 유리 구슬 장식, 일종의 스노우볼 구조 때문에 사실상 컵으로 사용하기는 어렵다. 크기도 작다. 커피 한 잔 제대로 마시기엔 애매한 사이즈다.
그래서 이 물건은 처음부터 사용을 위한 물건이 아니라 보관을 위한 물건이 된다. 컵이라는 형태를 하고 있지만 기능은 장식품에 가깝다. 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실생활에서 계속 쓰는 물건이었다면 언젠가는 깨지거나 낡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상태로 남는다.
결국 이 머그컵은 주방이 아니라 책상 위에 놓이게 되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여행을 기억하기 위한 표식으로 남은 셈이다.
여행의 마지막 날이 가진 감정
여행의 마지막 날에는 특유의 공기가 있다. 일정은 아직 남아 있지만 이미 끝난 느낌이 드는 시간이다. 짐을 거의 다 정리해 둔 상태, 남은 시간 동안 특별한 관광지를 더 가기보다는 그냥 거리를 걷게 되는 시간. 도톤보리를 다시 걷던 그날도 그런 분위기였다.
처음 방문했을 때의 도톤보리는 ‘봐야 할 장소’였다면, 마지막 날의 도톤보리는 ‘머물고 싶은 장소’에 가까웠다. 무엇을 더 보겠다는 목적 없이 걷고, 간판을 보고, 강을 바라보고, 그냥 시간을 보내던 시간이었다. 그때 들어간 스타벅스에서 이 머그를 발견했다.
그래서 이 물건은 오사카의 상징이라기보다 그날 아침의 기억에 가깝다. 귀국을 앞둔 묘한 안정감과 아쉬움, 여행이 끝난 뒤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감정 같은 것들이 같이 묶여 있다.

왜 스타벅스 기념품인가
여행지에서 스타벅스에 들어가는 건 조금 특이한 행동처럼 보일 수 있다. 낯선 나라에 왔는데 굳이 익숙한 브랜드를 찾는 행동이니까. 그런데 여행 중에는 오히려 그런 공간이 필요해진다. 완전히 낯선 장소 사이에서 잠깐 익숙한 공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의 지역 머그는 그래서 재미있는 물건이다. 글로벌 브랜드인데도 도시의 정체성이 들어간다. 이 머그에도 오사카의 요소들이 그려져 있다. 도시 이름, 거리 풍경, 캐릭터화된 랜드마크들.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추상적인 것도 아닌, 기억을 상징으로 바꾼 형태다.
그래서 여행이 끝난 뒤 이 머그를 보면 실제 풍경이 떠오른다기보다 ‘그 도시를 여행했을 때의 나’가 떠오른다.
여행 기념품의 역할
사람은 여행을 오래 기억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구체적인 일정, 방문 순서, 이동 동선은 생각보다 빨리 흐릿해진다. 대신 특정 장면 하나가 남는다. 그리고 그 장면을 다시 불러오는 장치가 기념품이다.
이 머그컵도 그렇다. 오사카의 모든 일정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날의 밤 공기, 도톤보리의 소리, 귀국을 앞둔 기분은 이 물건을 보는 순간 다시 선명해진다.
그래서 여행 기념품은 실용성이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쓸 수 없을수록 더 기념품에 가깝다. 사용할수록 소모되지만, 사용하지 않을수록 기억을 보존한다. 이 머그컵이 실제 컵으로 쓰이지 않는 이유가 오히려 의미가 된다.
결국 여행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 속에서 단순화된다. 하지만 물건 하나는 그 시간을 계속 현재로 붙잡아 둔다. 그래서 어떤 여행은 사진보다, 글보다, 작은 물건 하나로 더 오래 남는다. 이 오사카 머그가 바로 그런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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