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센트럴 한복판을 걷다 보면 거대한 빌딩 사이로 의외로 시야가 트이는 공간을 만나게 된다. 유리 외벽의 금융 빌딩과 바쁜 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광장이다. 이곳이 바로 황후상 광장(Statue Square)이다.
이름만 들으면 웅장한 궁전 앞 광장이나 왕실과 관련된 장소를 떠올릴 수도 있다. 우리말로는 ‘황후상 광장’이라 불리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황후도 없고, 황후상도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과거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는 점이 이 장소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센트럴을 처음 찾는 여행자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홍콩의 식민지 역사와 현재가 동시에 겹쳐 보이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꽤 의미 있는 장소다.

이름의 시작,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
영어 이름인 Statue Square는 말 그대로 ‘동상이 있는 광장’이라는 뜻이다. 이곳이 황후상 광장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과거 이 자리에 빅토리아 여왕 동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홍콩이 영국 식민지였던 시절, 빅토리아 여왕은 제국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자연스럽게 홍콩 중심부 한복판에도 그녀의 동상이 세워졌고, 사람들은 이곳을 동상이 있는 광장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황후상 광장’이라는 이름이 굳어진 것이다.
도시의 한복판 광장 이름에 식민지 시대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홍콩이라는 도시의 복합적인 역사가 느껴진다.


지금은 없는 황후상
하지만 현재 광장에 가보면 빅토리아 여왕 동상은 보이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홍콩이 일본군에 점령되면서 동상은 철거되었고, 이후 다른 장소로 옮겨졌다. 현재 빅토리아 여왕 동상은 코즈웨이베이에 있는 빅토리아 파크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황후상 광장은 이름과 실제 모습이 조금 다르다. 처음 가는 사람 입장에서는 “황후상은 어디 있지?” 하고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부재가 이 장소를 더 인상적으로 만든다. 동상은 사라졌지만 이름은 남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예전 이름으로 이곳을 부른다. 도시가 과거를 완전히 지우지 않고 기억하는 방식처럼 느껴진다.


지금 광장을 지키는 동상
현재 광장에서는 빅토리아 여왕 대신 다른 인물을 만나게 된다. 대표적으로 토마스 잭슨(Thomas Jackson) 동상이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홍콩상하이은행(HSBC)의 초대 총경리로, 홍콩 금융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홍콩의 중심부가 왜 센트럴인지, 왜 이 지역이 금융도시의 상징인지 생각해 보면 이런 변화도 자연스럽다. 제국의 상징이 있던 자리에 이제는 금융의 상징이 서 있는 셈이다.
과거 제국의 도시에서 세계 금융도시로 변한 홍콩의 흐름이 광장 안에 압축되어 있는 느낌이 든다.


고층 빌딩 사이에서 느끼는 압도감
황후상 광장 자체의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서울의 대형 광장처럼 넓게 펼쳐진 공간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 풍경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광장 맞은편에는 거대한 HSBC 본사 빌딩이 서 있고, 주변으로는 초고층 오피스 빌딩들이 둘러싸고 있다. 위를 올려다보면 유리와 철골 구조물이 하늘을 가득 채운다.
덕분에 광장 자체보다도, 그 광장을 감싸고 있는 도시의 스케일이 더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단순한 공터가 아니라, 세계 금융 중심지 한복판의 열린 공간이라는 점이 이곳의 매력이다.
주말의 광장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내가 방문했을 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말 풍경이었다. 평일의 센트럴은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비즈니스 지역이지만, 주말이 되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광장과 그 주변 보행 공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돗자리를 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함께 음식을 먹는 사람들,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 사람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모습이 펼쳐졌다.
홍콩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휴일에 모여 시간을 보내는 풍경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보니 단순한 군중이 아니라 하나의 생활문화처럼 느껴졌다. 도시의 중심부가 주말만큼은 거대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바뀌는 셈이다.
싱가포르에서 보았던 주말 도심 풍경과도 닮아 있어 묘하게 익숙하면서도 흥미로웠다.


북쪽에 남아 있는 전쟁의 기억
광장 북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눈에 띄는 기념비가 있다. 바로 Cenotaph(전몰자 추모비)다.
1923년에 세워진 이 기념비는 처음에는 제1차 세계대전 전사자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었고, 이후 제2차 세계대전 희생자를 기리는 의미도 더해졌다.
센트럴의 화려한 금융 빌딩과 쇼핑몰 사이에서 이런 전쟁 추모비를 만나는 순간은 꽤 묘하다. 현재의 번영 뒤에는 격동의 시대를 지나온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주변까지 함께 보면 더 흥미로운 장소
황후상 광장 주변은 홍콩의 핵심 랜드마크들이 밀집한 지역이다. 동쪽으로는 옛 대법원 건물(현재 종심법원 관련 시설과 역사적 상징 공간), 서쪽으로는 HSBC 본사, 남쪽으로는 센트럴역과 상업지구, 조금만 걸으면 피크트램과 세인트 존 대성당까지 이어진다.
즉, 황후상 광장은 단독 목적지라기보다 센트럴 산책 동선의 중심축 같은 장소다. 어디로 이동하든 한 번쯤 지나가게 되고, 그래서 더 자연스럽게 기억에 남는다.

화려하지 않아도 오래 남는 장소
솔직히 말하면 황후상 광장은 스타의 거리처럼 화려한 야경 명소는 아니다. 빅토리아 피크처럼 압도적인 전망이 있는 곳도 아니다. 사진 한 장만 보고 일부러 찾아갈 장소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직접 가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이곳에는 홍콩의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있다. 식민지 시대의 흔적, 전쟁의 기억, 금융도시의 상징,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한 공간 안에 공존한다. 그런 층위가 느껴지는 장소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홍콩 센트럴을 걷게 된다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이 광장을 둘러보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 홍콩 센트럴 황후상 광장 (Statue Square)
- 📍 주소 : Des Voeux Rd Central, Central, Hong Kong
- 📞 전화번호 : –
- 🌐 홈페이지 : https://www.amo.gov.hk/
- 🕒 운영시간 : 24시간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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