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도착한 이유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서”
이날 베스트 덴키 스타디움에는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전날 후쿠오카 공항 근처에 숙소를 잡아두었던 이유도, 결국은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되는 거리,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동선. 덕분에 아침을 먹고도 여유 있게 경기장 쪽으로 향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벤트 존에서 최대한 앞자리를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이미 앞자리는 상당 부분 채워져 있었다. ‘아침 일찍 오면 여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은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던 건, 다른 공연과 원정에서도 자주 얼굴을 봤던 익숙한 팬이 이미 앞자리를 하나 잡아두고 있었고, 그 근처에 간신히 한두 자리 정도의 여유가 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우리도 망설일 틈 없이 그 자리에 섰다. 이 자리를 놓쳤다면, 오늘의 풍경은 전혀 다르게 기억됐을지도 모른다.
앞자리를 확보하고 나니,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아직 공연은 시작되지 않았고, 무대는 세팅 중이었지만, ‘오늘은 이 거리에서 미유를 본다’는 확신 하나만으로도 마음은 이미 충분히 채워진 상태였다.

리허설과 준비, 그리고 기다림, 무대가 완성되어 가는 시간
이벤트 존은 아직 완성된 공연장이라기보다는, 무대가 만들어지는 과정 한가운데에 놓인 공간에 가까웠다.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음향 체크가 반복되었고, 치어리더들은 동선을 맞추며 마지막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미 앞선 글에서 충분히 담아냈던 장면들이었고, 이곳이 ‘공연 전의 공간’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날씨는 여전히 가혹했다. 10월 말이라는 계절감이 무색할 만큼 햇볕은 강했고, 이벤트 존 앞자리를 지키는 일은 체력 소모를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자리를 벗어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늘 이 거리를 포기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자리는 단순히 ‘앞자리’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기억하는 기준점에 가까웠다.

미유를 기다리는 시간, 이름이 불리지 않아도 느껴지는 존재감
공연 시간이 다가오면서, 이벤트 존의 공기는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직 공식적인 소개는 없었고, 무대 위에 이름이 불린 것도 아니었지만, 모두가 같은 방향을 의식하고 있다는 느낌만은 분명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무대 뒤쪽과 출입 동선 쪽으로 향했고, 카메라는 이미 전원이 켜진 상태였다.
익숙한 팬들의 얼굴도 속속 눈에 들어왔다. 다른 지역 공연, 다른 원정에서 여러 번 마주쳤던 사람들. 굳이 말을 걸지 않아도 서로의 목적은 명확했다.
- “오늘도 여기까지 왔네.”
- “이번에도 결국 왔구나.”
짧은 눈인사와 고개 끄덕임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공간에 모인 이유를 굳이 말로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미유가 이미 경기장 어딘가에 도착해 있을 거라는 사실만으로도, 기다림은 단순한 대기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처럼 느껴졌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안에 있다는 감각. 꼭 눈앞에 있지 않아도,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은 충분히 채워지고 있었다.

놓쳐버린 순간, 그리고 더 선명해진 기다림
공연 직전, 미유가 잠깐 무대 근처에 모습을 비췄다는 이야기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하필 그 짧은 순간에 자리를 비운 탓에 직접 보지는 못했고, 이후에 영상을 통해서야 그 장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알고 나서야 밀려오는 아쉬움은 꽤 컸다. 오늘 같은 날, 그런 순간 하나를 놓쳤다는 사실은 쉽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아쉬움은 곧 다른 감정으로 바뀌었다. 모든 장면을 다 담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이 기다림이 더 또렷해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미유를 실제로 마주하기 전의 이 시간, 햇볕 아래에서 서서 숨을 고르고, 사람들 사이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이 순간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공연은 곧 시작될 것이고, 미유는 반드시 이 무대에 올라올 것이다. 그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그래서 지금은 그저 기다리면 된다. 이 기다림 자체가, 이미 공연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짧지만 강렬했던 이벤트 스테이지, 가까이서 마주한 목소리
이벤트 존에서의 공연은 길지 않았다. 애초에 축구 경기 전 이벤트라는 성격을 생각하면, 긴 러닝타임을 기대하는 쪽이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그 무대가 시작되고 나니, 시간의 길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중요한 건 얼마나 오래 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가까이에서, 얼마나 또렷하게 마주하느냐였으니까.
무대와 관객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훨씬 가까웠다. 콘서트장에서 느끼는 ‘무대 위 사람’이 아니라, 같은 공간에 서 있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릴 정도였다. 표정 하나, 시선의 방향, 숨을 고르는 타이밍까지도 또렷하게 전해졌다. 이벤트 존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이 짧은 무대는 꽤 밀도 높은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미유가 다시 꺼낸 곡, 『DO IT NOW!』
첫 곡은 『DO IT NOW!』였다. 곡이 시작되자마자, 주변의 공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 리허설과 행사 안내로 채워져 있던 공간이, 단번에 ‘공연장’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미유의 목소리는 야외라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또렷했고, 무대를 크게 쓰지 않아도 충분히 공간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 짧은 도입부만으로도,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는 이미 설명이 끝난 셈이었다.
『DO IT NOW!』라는 곡 선택 역시 우연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꽤 의미심장했다. 이 곡은 미유가 어린 시절에 잠깐 불렀던 곡으로, 성인이 된 이후에는 거의 무대에서 꺼내지 않았던 카드에 가깝다. 무엇보다 이 곡은 미유가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다. 말 그대로, 그녀의 언어와 생각이 가장 솔직하게 담긴 곡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제목부터가 강렬하다. DO IT NOW. 지금 당장 움직여라. 미루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바로 행동하라는 메시지. 축구 경기장을 앞둔 이벤트 스테이지라는 공간과 이보다 잘 어울리는 곡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경기 시작을 기다리는 팬들, 이미 달아오른 공기, 그리고 무언가 곧 시작될 것 같은 긴장감 속에서 이 곡은 공간의 성격을 정확히 짚어냈다.
가사는 일본어였기 때문에 세세한 의미까지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굳이 모든 단어를 알아듣지 않아도 전달되는 분위기가 있었다. 제목이 주는 직관적인 힘, 그리고 미유의 표정과 제스처가 함께 만들어내는 메시지는 충분히 분명했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는 것, 망설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 그 메시지는 경기장을 향한 에너지와도, 이 자리에 모인 팬들의 마음과도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미유가 이 곡을 다시 꺼내 들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오랜 시간 봉인해 두었던 노래를, 그것도 자신의 뿌리와 가장 가까운 곡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선택했다는 점. 그 선택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이 무대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미유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DO IT NOW!』는 단순히 분위기를 띄우는 오프닝 곡이 아니라, 이 날 이벤트 스테이지 전체를 관통하는 선언처럼 들렸다. 짧은 무대였지만, 이 곡 하나만으로도 미유가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는 충분히 설명되고 있었다.
일부 한국어로도 울려펴진, 이어진 곡 『Terminal』
이어진 『Terminal』은 분위기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갔다. 『DO IT NOW!』가 현재를 밀어붙이는 선언이라면, 이 곡은 그 반대편에서 시간을 천천히 되짚는 노래였다. 『Terminal』 역시 미유가 직접 작사·작곡한 곡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공항과 역, 터미널이라는 공간에서 느꼈던 감정을 풀어낸 노래라고 알려져 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서 있기도 하고, 누군가를 보내기 위해 멈춰 서 있기도 하는 곳. 이 곡에서의 터미널은 단순한 이동 공간이 아니라, 감정이 교차하는 지점이었다.
곡이 후반부로 접어들 무렵, 예상치 못한 언어가 자연스럽게 섞였다. 한국어 가사였다. 그 순간, 이 무대는 더 이상 ‘후쿠오카의 이벤트 공연’이 아니게 되었다. 일본 팬들이 훨씬 많은 공간이었고, 굳이 그렇게까지 해주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미유는 그 선택을 했다. 『DO IT NOW!』가 지금 당장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하는 곡이라면, 『Terminal』은 그 과정에서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감정의 정거장을 조용히 보여주는 노래였다.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벅찼는데, 그 목소리가 익숙한 언어로 들려오는 순간, 이 노래는 더 이상 ‘누군가의 곡’이 아니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 사이를 오가며 만들어진 이 노래가, 다시 그 경계를 넘는 언어로 불려졌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장면처럼 느껴졌다.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터미널이라는 장소성이, 이 이벤트 존이라는 공간과 묘하게 겹쳐지면서 감정은 훨씬 깊은 층으로 내려갔다.
이미 많이 빼앗긴 마음을, 또 한 번 기꺼이 내어주는 순간이었다. 저항 같은 건 애초에 의미가 없었다. 『DO IT NOW!』가 나를 앞으로 밀어냈다면, 『Terminal』은 뒤를 돌아보게 하면서도 결국 같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만들었다. 짧은 두 곡이었지만, 이 순서와 이 조합은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이 무대는 분명히, 의도된 흐름 속에서 완성되고 있었다.

시선이 닿는 순간, 기록이 흔들리다
공연을 촬영하며 손을 흔들던 순간이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사실도, 촬영 구도를 맞추고 있다는 것도 잠시 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손이 먼저 움직였다. 그리고 그 순간, 미유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정확히 ‘나를 봤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방향을 의식하고 있다는 건 분명히 느껴졌다. 곧이어 미유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짧은 교차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종류의 감정이었다. 무대 위와 아래, 공연자와 관객이라는 선이 잠시 흐려지는 순간. 기록자로서의 시선과, 팬으로서의 감정이 완전히 겹쳐버린 지점이었다.
나중에 촬영한 영상을 다시 확인했을 때, 화면은 생각보다 많이 흔들려 있었다. 프레임은 완벽하지 않았고, 손떨림 보정이 필요할 정도로 영상은 불안정했다. 하지만 그 흔들림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그 순간의 상태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차분하게 촬영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는 사실이, 화면 안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짧은 무대가 남긴 긴 여운
공연은 정말 순식간에 끝났다. 박수와 환호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이벤트 존은 다시 다음 순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서는 장비 정리가 이루어졌고, 스태프들은 다시 분주해졌다. 하지만 방금까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던 공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팬들의 표정에서도 비슷한 감정이 읽혔다. 길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그 짧은 시간만으로도 충분했다는 공감 같은 것. 이벤트 존 공연은 ‘짧았기 때문에 더 선명한’ 장면으로 남았다. 길게 이어지는 단독 콘서트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억에 깊이 박히는 종류의 무대였다.
햇볕 아래서 기다린 시간, 땀이 흐르던 순간들, 앞자리를 지키기 위해 서 있던 기억들, 그리고 흔들린 영상까지. 이 모든 조각들이 하나로 묶이면서, 이 이벤트 스테이지는 단순한 부속 일정이 아니라 후쿠오카 원정의 핵심 장면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이어질 경기장 안 공연을 앞두고 우리는 다시 자리를 정리해야 했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분명했다. 이 이벤트 존에서의 짧은 무대만으로도, 후쿠오카까지 온 이유는 이미 충분히 설명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바래지지 않을 것 같았다.
📌 장소 정보 ― 베스트 덴키 스타디움 (Best Denki Stadium)
- 📍 주소: 1-1 Higashihirao Park, Hakata Ward, Fukuoka, Japan
- 📞 전화번호: +81-92-623-7000
- 🌐 홈페이지: https://www.avispa.co.jp/
- 🕒 운영시간: 경기 및 이벤트 일정에 따라 상이 (홈경기일 기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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