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웠기에 더 또렷했던, 연말의 선택
이번 도쿄 여행은 여러모로 기존의 여행들과는 결이 전혀 다른 여행이었다. 일정부터가 그랬다. 불과 몇 주 전인 12월 초에도 1박 2일로 도쿄에 짧게 다녀온 적이 있었고, 그때 느꼈던 “짧은 도쿄도 충분히 기분 전환이 된다”는 감각이 아직 가시기도 전이었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다시 도쿄행을 선택했다. 계획을 세웠다기보다는, 어느 순간 이미 항공권을 검색하고 있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 그대로 결제가 이루어졌다. 말 그대로 충동에 가까운 결정이었다.
이번 여행의 출발점은 ‘연말’이라는 시간이었다. 2024년의 마지막 날, 그리고 2025년의 첫날을 어디에서 맞이할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익숙한 선택지 대신 조금은 다른 장면을 떠올려보고 싶어졌다. 늘 그랬듯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동해로 향하거나, 혹은 집에서 조용히 한 해를 정리하는 방식도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그 어느 쪽도 마음에 완전히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아예 해외에서 새해를 맞이해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스쳤고, 그 생각은 생각보다 빠르게 현실이 되었다.
항공권은 출발을 불과 3일 앞두고 구입했다. 연말이라는 시기적 특성상 가격은 당연히 저렴하지 않았고, 숙소 역시 미리 잡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러 정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밤을 새울 가능성이 높았고, 연말과 연초가 맞닿는 시간 자체를 온전히 경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사용하지 않고 남아 있던 연차가 하루 있었고, 12월 31일에 그 하루를 붙이니 1월 1일까지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정이 완성되었다. 그렇게,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선택으로 연말 도쿄 여행이 시작되었다.

2024년의 끝을 도쿄에서 맞이한다는 것
연말이라는 시기는 묘하다. 한 해를 잘 보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고, 동시에 새해에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욕심도 생긴다. 그래서인지 연말이 되면 유난히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감정이 강해진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 그것도 비교적 익숙한 도시인 도쿄를 선택했다는 점이 조금 달랐다.
그동안 해외에서 연말을 보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항상 한국에서, 익숙한 풍경 속에서 한 해를 마무리해왔다. 그래서 더더욱 이번 선택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 연말 특유의 들뜬 분위기, 도시 곳곳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이벤트, 그리고 일본 특유의 차분하면서도 정돈된 연말 공기 속에서 새해를 맞이해보는 경험은 분명 색다를 것 같았다. 단순히 관광지를 도는 여행이 아니라, ‘시간의 경계’를 다른 장소에서 통과해보는 여행이라는 점에서 이번 도쿄행은 출발 전부터 조금 다른 무게감을 가지고 있었다.


12월 31일, 하루에 두 개의 무대가 겹친 날
이번 여행을 결정하게 만든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공연 일정이었다. 최근 들어 오프라인 공연을 직접 찾아다니며 자주 보고 있는 카노우 미유가 소속된 그룹 시스(SIS/T)의 무대가, 공교롭게도 12월 31일 하루에 두 개나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일본 무도관에서 열리는 대형 연말 행사였고, 또 하나는 도쿄의 카메이도 클락(Kameido Clock)이라는 쇼핑몰 내 이벤트 존에서 열리는 비교적 소규모 미니 라이브였다.
무도관 공연은 수십 팀이 함께하는 연말 축제 성격의 무대였고, 시스는 그중 오프닝을 담당하고 있었다. 시간만 맞는다면 그 무대까지 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지만, 현실적으로는 항공편 도착 시간과 이동 동선을 고려했을 때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현실적인 목표는 카메이도 클락에서 열리는 미니 라이브였다. 만약 운이 좋게 여유가 생긴다면 무도관까지, 그렇지 않다면 미니 라이브 하나에 집중하는 것. 그 정도의 유연함을 남겨둔 채 여행을 시작했다.
결국 이번 여행은 “연말에 도쿄에 간다”기보다는, “12월 31일의 특정 시간과 장소에 나를 데려다 놓는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관광보다도 명확한 목적이 있었고, 그 목적을 중심으로 모든 일정이 느슨하게 얽혀 있었다.

겨울의 도쿄, 그리고 체감 온도의 차이
12월의 도쿄는 늘 생각보다 온화하다. 서울에서는 이미 롱패딩이 자연스러워지는 시기지만, 도쿄는 여전히 영상의 기온을 유지하는 날이 많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기준으로는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입을 법한 가을 코트 하나면 충분했다. 실제로 도쿄에 도착해 하루를 걸어 다니며 느낀 체감 온도는 ‘춥다’기보다는 오히려 ‘걷기 좋다’에 가까웠다.
두꺼운 옷을 챙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여행의 리듬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연말이라는 이유로 괜히 몸을 움츠리게 되는 순간이 적었고, 자연스럽게 더 많이 걷고, 더 오래 밖에 머무를 수 있었다. 도쿄의 겨울이 가진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급하게 떠난 만큼, 비싸게 치른 항공권
다만, 충동의 대가는 분명했다. 항공권은 싸지 않았다. 출발편은 에어서울을 이용해 인천에서 나리타 공항 제1터미널로 들어갔고, 귀국편은 에어로K를 이용해 나리타 공항 제3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일정이었다. 왕복 항공권은 트립닷컴을 통해 구매했는데, 결제 통화가 파운드로 표기되어 있어 체감 가격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총 결제 금액은 179.9파운드, 한화로 약 33만 원대였다.
분명 1박 2일 여행치고는 부담이 되는 금액이었지만, 연말이라는 시기와 급박한 일정, 그리고 이 여행이 가진 성격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감수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결정된 여행이 오히려 더 또렷한 기억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는 걸 이미 여러 번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작된 2024년 연말 도쿄 여행은 막을 올렸다. 도쿄의 연말 풍경, 12월 31일의 공기, 그리고 그날 밤을 어떻게 보내게 될지는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2024년의 마지막 장면과 2025년의 첫 장면을, 나는 도쿄에서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
이제, 이야기는 공항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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