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역 도착,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밥’
스카이라이너를 타고 우에노역에 도착했을 때의 시각은 대략 오전 11시 30분쯤이었다. 여행을 몇 번 다녀오지 않았다면 “벌써 점심 시간이네” 정도의 감상으로 끝났을지도 모르지만, 우에노는 이제 너무 자주 와버린 탓에 묘하게 일상의 연장선처럼 느껴지는 장소가 되어 있었다. 익숙한 역 내부 풍경, 비슷한 동선, 그리고 언제나처럼 북적이는 관광객들까지. 도쿄에 도착했다는 감각보다는 ‘다시 왔다’는 쪽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배였다. 인천공항에서 크리스피 크림 도넛과 커피로 간단히 아침을 때운 것이 전부였고, 이른 새벽부터 이어진 이동 탓에 몸은 이미 연료를 요구하고 있었다. 숙소로 바로 이동해 체크인을 할 수도 있었지만, 체크인 시간도 애매했고 무엇보다 빈속으로 짐을 끌고 이동하는 건 생각보다 피곤한 선택이었다. 결국 자연스럽게 결론은 하나로 모아졌다. 우에노에서 먼저 한 끼를 해결하고 움직이자.

우에노에서 만난 ‘아부라소바’라는 선택지
일본에 도착해 첫 끼니를 고민할 때, 나에게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너무 무겁지 않을 것, 이동 후 바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그리고 일본에 왔다는 감각을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 그런 조건을 놓고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 바로 아부라소바였다.
아부라소바는 흔히 ‘기름 비빔라멘’이라고 설명되지만, 실제로 먹어보면 단순히 기름지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음식이다. 한국의 비빔면과 구조적으로는 닮아 있지만, 면 자체가 훨씬 두껍고 탄력이 강하며, 양념 역시 매운맛 중심이 아니라 간장 베이스의 고소함과 감칠맛에 무게를 둔다. 여기에 각종 식초, 고추기름, 마늘 등을 추가해 취향에 맞게 완성해가는 방식이 특징이다.
무엇보다도, 우에노에는 이 아부라소바를 전문으로 하는 매장이 눈에 띄게 자리하고 있다. 바로 도쿄 아부라소바 우에노점(東京油組総本店 上野組)이다.


케이세이 우에노역과 JR 우에노역 사이, 애매하지만 좋은 위치
이 매장은 위치 설명이 조금 애매하다. 케이세이 우에노역을 기준으로 하면 동쪽 방향, JR 우에노역을 기준으로 하면 남쪽 방향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두 역 사이를 연결하는 동선 중간쯤에 자리하고 있다. 큰길 바로 옆에 있어 간판만 잘 찾으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지만,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여기가 맞나?” 하고 한 번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되는 위치이기도 하다.
매장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외관만 보면 ‘잠깐 먹고 나오는 곳’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하지만 이게 오히려 우에노라는 지역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객과 현지인이 뒤섞여 빠르게 회전하는 동네, 오래 앉아 있기보다는 필요한 만큼 채우고 다시 이동하는 흐름에 최적화된 공간이라는 느낌이었다.

자판기로 시작하는 주문, 그리고 예상 밖의 조건
매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입구에 놓인 자판기다. 일본 라멘집 특유의 시스템인데, 다행히 이곳은 일본어·영어·한국어·중국어를 모두 지원하고 있어 언어 장벽은 거의 없다. 메뉴 구성도 단순한 편이라 선택에 큰 고민이 들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자판기 외형만 보면 카드 결제가 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현금만 사용 가능했다. 여행 초반이라 엔화를 충분히 준비해둔 상태였기에 문제는 없었지만, 카드 결제에 익숙한 여행자라면 잠깐 당황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메뉴는 크게 두 가지다. 기본 간장맛 아부라소바와 매운 된장맛 아부라소바. 가격은 각각 880엔과 980엔. 그리고 특이한 점 하나. 사이즈에 따른 가격 차이가 거의 없다. 보통, 보통, 대, 특대가 모두 동일한 가격이거나 아주 미미한 차이만 있다. 이런 구조를 보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생각이 든다. “이왕이면 많이 먹는 게 낫지 않나?”
그래서 고민 없이 특대 사이즈, 간장맛으로 선택했다. 2018년에 처음 이 브랜드를 먹어봤을 때, 양이 다소 아쉽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처음부터 여유 있게 가보기로 했다.

섞을수록 완성되는 음식, 아부라소바의 매력
자리에 앉아 잠시 기다리자, 면이 담긴 그릇이 나왔다. 처음 마주한 모습은 생각보다 담백하다. 양념이 위에 보이지 않고, 면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바로 아부라소바의 특징이다. 양념은 모두 그릇 아래에 깔려 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면을 아래까지 충분히 들어 올려 섞는 것이다.
젓가락으로 바닥까지 긁어가며 몇 차례 비비다 보면, 점점 면에 윤기가 돌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비로소 아부라소바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기본 간장 베이스만으로도 충분히 고소하고 깊은 맛이 나지만, 매장 곳곳에 비치된 양념들이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일본어 설명을 읽지 않으면 알기 어렵지만, 고추기름, 식초, 마늘, 후추 등으로 보이는 양념들을 조금씩 조합해가며 맛을 조정할 수 있다. 이 과정 자체가 꽤 즐겁다. 한 젓가락은 기본 양념으로, 다음 한 젓가락은 살짝 매콤하게, 또 그다음은 산미를 더해보는 식으로 말이다.
특대 사이즈를 선택한 덕분에, 이런 실험을 하면서도 충분한 양을 즐길 수 있었다. 2018년의 기억과 달리, 이번에는 ‘아쉽다’는 생각 없이 꽤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었다. 특히 식사량이 많은 편이거나, 여행 초반에 에너지를 확실히 보충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특대 사이즈는 거의 필수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식사로서의 만족감
이렇게 우에노에서의 첫 식사는 예상보다 훨씬 만족스럽게 마무리되었다. 무겁지 않으면서도 든든했고, 일본에 왔다는 감각도 확실히 살아났다. 무엇보다 여행 초반의 허기를 제대로 잠재워준 덕분에, 이후의 일정도 한결 여유 있게 이어갈 수 있었다.
아부라소바는 화려한 관광 명소처럼 기억에 남는 음식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행의 흐름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주는 첫 끼니로서는, 이만큼 적절한 선택도 드물다. 그렇게 배를 채운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숙소 체크인을 향해 다시 우에노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쿄 여행은 그렇게, 꽤 현실적인 방식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 東京油組総本店 上野組 (아부라소바 우에노점)
- 📍 주소: 6 Chome-14-7 Ueno, Taito City, Tokyo 110-0005, Japan
- 📞 전화번호: +81-3-3837-8869
- 🌐 홈페이지: https://www.tokyo-aburasoba.com
- 🕒 영업시간: 11:00 –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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