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노시마를 천천히 걸어 올라 세 번째 신사를 지나고 나면, 섬의 동쪽 끝자락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난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중심부와는 달리, 이 길은 바다 쪽으로 트여 있어 한결 조용한 분위기를 띤다. 그 길을 따라 조금만 더 걸어가면, 바닷가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하나의 종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이 바로 용연의 종, 류렌노카네(龍恋の鐘)다.
에노시마를 대표하는 장소 중 하나로, 이 종은 단순한 전망 명소가 아니라 오랜 전설을 품고 있는 장소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자연스럽게 ‘연인들의 성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에노시마를 찾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곳을 일정에 포함시키곤 한다.

전설이 깃든 연인의 성지, 용연의 종
용연의 종이 자리한 이 언덕은 예부터 ‘연인의 언덕(龍野ヶ岡)’이라 불려왔다. 그 배경에는 헤이안 시대에 정리된 『에노시마 연기』에 등장하는 천녀와 오두룡의 전설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에노시마 인근에는 다섯 개의 머리를 가진 용이 살고 있었고, 이 용은 사람들에게 재앙을 가져오는 존재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내려온 아름다운 천녀가 에노시마에 머물게 되었고, 그녀를 본 용은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된다. 천녀와의 인연을 통해 용은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고, 사람들을 지키는 존재로 변해간다. 결국 두 존재는 깊은 인연을 맺게 되고, 용은 섬과 지역을 수호하는 존재로 남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 바로 용연의 종이다. 그래서 이 종은 단순히 ‘사랑을 이루어 준다’는 의미를 넘어, 사랑을 통해 변화하고, 인연을 지켜낸다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종을 울리며 소원을 비는 행위는, 그런 전설을 지금의 시간으로 이어오는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종, 그리고 사랑의 자물쇠
용연의 종이 있는 장소의 가장 큰 매력은 탁 트인 풍경이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가미만의 바다가 시야 가득 펼쳐지고, 날씨가 맑은 날에는 멀리 후지산의 윤곽까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특히 해 질 무렵에는 하늘과 바다가 서서히 붉게 물들며, 이 장소가 왜 연인들의 명소로 불리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풍경이 만들어진다.
종 주변의 울타리를 따라가다 보면, 수없이 많은 자물쇠들이 빼곡히 걸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름이나 날짜, 간단한 메시지가 적힌 자물쇠들은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시간과 감정을 그대로 남겨두고 있는 듯하다. 이 풍경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서울의 남산타워가 떠올랐다. 도시를 내려다보며 사랑의 자물쇠를 거는 남산타워와, 바다를 배경으로 자물쇠가 매달린 에노시마의 풍경은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인상을 준다.
도시의 야경 대신 바다가 있고, 높은 타워 대신 낮은 언덕이 있지만, 서로의 인연이 오래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만큼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여서 더 오래 머물게 된 장소
이곳을 찾은 사람들 대부분은 연인이나 친구와 함께였지만, 이번 방문에서 나는 혼자였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이 장소가 쓸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혼자였기에, 종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전설과 풍경을 곱씹을 수 있었고, 바닷바람 소리와 종이 흔들리는 소리를 조금 더 오래 듣게 되었다.
자물쇠를 걸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지 자연스럽게 상상해 보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들 역시, 혼자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선물 같은 느낌이 든다.
종을 한 번 더 바라보고, 바다 쪽으로 시선을 옮긴 뒤, 다음 장소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에노시마에서는 아직 더 볼 곳들이 많이 남아 있었으니까.
📍 용연의 종 (龍恋の鐘)
- 주소 :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 에노시마 2초메 5
- 전화번호 : +81-466-22-4141
- 홈페이지 : https://www.fujisawa-kank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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