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마치고 난 뒤, 우리는 자연스럽게 요코하마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미나토 미라이 21″이었다. 첫째 날이 카노우 미유의 HELLO, TOKYO 촬영지를 따라가는 ‘팬의 시선’으로 구성된 여정이었다면, 셋째 날은 일본인 친구가 직접 안내해주는, 보다 정공법에 가까운 요코하마 투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네 명은 요코하마역을 출발해, 항구도시의 상징처럼 자리 잡은 이 지역으로 이동했다.

계획도시로 태어난 요코하마의 얼굴
미나토 미라이 21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요코하마가 도시의 미래를 걸고 추진해 온 대규모 계획도시다. 1980년대부터 구상이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정비와 개발이 이어지고 있는, 말 그대로 ‘현재진행형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약칭으로는 흔히 ‘미나토미라이’라고 불리며, 요코하마를 대표하는 이미지 대부분이 이곳에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지역의 출발점에는 요코하마가 안고 있던 도시 문제들이 있었다. 간토 대지진, 태평양 전쟁, 그리고 전후 연합군 점령을 거치며 도심 기능이 분산되고,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도시 구조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60년대 중반 제안된 ‘요코하마시 6대 사업’ 중 하나가 바로 도심부 강화를 목표로 한 임해부 재개발 계획이었다. 미쓰비시 중공업 조선소와 부두가 있던 이 공간을 재정비해, 새로운 도심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구상이었다.
오일쇼크와 버블 붕괴라는 굵직한 변수들로 계획은 여러 차례 지연되었지만,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와 퍼시피코 요코하마를 시작으로 조금씩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고, 2000년대 이후 다시 탄력을 받으며 지금의 미나토 미라이 21로 성장해 왔다. 지금 이곳을 걷다 보면, ‘계획도시’라는 단어가 추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정돈된 동선과 넓은 공간감이 자연스럽게 체감된다.


항구도시 요코하마가 주는 이국적인 여유
지하철을 타고 미나토미라이 지역에 도착하자, 공기의 질감부터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도쿄에서도 바다는 볼 수 있지만, 이곳의 바다는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부두에 정박한 배들, 넓게 트인 수변 공간, 그리고 고층 빌딩이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이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풍경은 ‘항구도시 요코하마’라는 말이 왜 자연스럽게 붙는지 단번에 이해하게 만든다.
관광객들을 위한 케이블카도 운행 중이었지만, 하루 종일 서 있고 걷는 일정이 이어진 탓에 우리 모두의 관심은 그쪽으로 향하지 않았다. 남자 넷이서 굳이 케이블카를 타야 할 이유도 없었고, 솔직히 말하면 다들 잠시라도 앉아서 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카페를 찾아 몇 군데를 둘러보았지만, 주말의 미나토미라이는 가족 단위와 연인들로 가득 차 있었고, 어디를 가든 자리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지친 다리를 이끌고 이곳저곳을 천천히 걸으며 풍경을 눈에 담았다.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곳. 미나토 미라이 21은 그런 공간이었다.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고, 정돈되어 있지만 차갑지 않은, 요코하마라는 도시의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는 태도
이번 미나토미라이21 일정에서 인상 깊었던 건, 장소 그 자체보다도 우리를 안내하던 일본인 친구의 태도였다.
보통 누군가가 가이드를 맡게 되면, 이곳이 어떤 곳인지, 무엇을 봐야 하는지, 왜 유명한지부터 설명하려 들기 마련인데, 그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여기는 이런 곳이다”라는 말 대신, “어디가 보고 싶어?” “바다는 좋아해?” 같은 짧은 질문만을 건넸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속도를 늦출 수 있었다.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되는 공간에서는 설명이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걸, 그 태도를 통해 처음으로 체감했던 것 같다. 미나토미라이의 풍경은 말로 풀어내기보다는, 그냥 서서 바라보는 편이 훨씬 어울리는 장소였고, 그는 그걸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우리가 걷는 동안 그는 앞서 나가지도, 뒤에서 재촉하지도 않았다. 어느 순간에는 우리보다 조금 뒤에서 걸었고, 또 어느 순간에는 옆에 나란히 서서 바다를 바라봤다. “이쪽이 유명해”라거나 “여기가 포인트야” 같은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대신, 우리가 멈추면 함께 멈췄고, 우리가 방향을 바꾸면 말없이 그 방향으로 따라왔다.
그 태도 덕분에 미나토미라이는 ‘관광지’라기보다는, 잠시 빌려 온 산책로처럼 느껴졌다. 계획된 동선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컨디션에 맞춰 흘러가는 동선.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찍은 사진들 역시, 어떤 명소를 증명하려는 사진이 아니라, 그냥 그 순간을 기록한 스냅에 가까웠다.
생각해보면 일본 여행에서 종종 느끼는 감정이 있다. 누군가가 과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굳이 의미를 강요하지 않아도, 그 공간이 스스로 말을 걸어오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 미나토미라이21은 그런 장소였고, 그 일본인 친구의 ‘굳이 설명하지 않는 태도’는 그 장소를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미나토미라이역 정보
- 📍 노선 : 미나토미라이선
- 📞 전화번호 : +81-45-641-7000
- 🌐 홈페이지 : https://www.mm21railway.jp/station/minatomirai/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