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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여행 — 시나가와 바 ‘델 솔(Del Sole)’

둘째 잔을 마실 때쯤 오늘 하루가 머릿속에서 정리되기 시작했다. 아침의 호텔 조식, 시나가와 거리의 조용한 풍경, 대학 캠퍼스의 공기, 에비스의 분위기, 신주쿠의 인파, 가부키초의 네온사인까지.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장면을 보고 이동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았다.

신주쿠에서 밤거리를 한참 걷고 난 뒤, 다시 시나가와로 돌아왔다. 하루 동안 이동한 거리만 생각해도 꽤 길었다. 아침에는 호텔에서 출발해 대학 캠퍼스를 걸었고, 에비스와 하라주쿠를 지나 메이지 신궁을 보고, 저녁에는 신주쿠까지 이어졌다. 전철을 몇 번 갈아탔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숙소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야 비로소 오늘 하루가 끝나가고 있다는 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시나가와역에 내렸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 하지만 바로 호텔로 들어가기에는 어딘가 아쉬웠다. 여행 마지막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늘이라는 하루를 조금 더 붙잡아두고 싶은 기분이었다. 일본 여행을 하다 보면 밤이 빨리 끝난다. 가게들이 생각보다 일찍 문을 닫고, 거리는 늦은 시각이 되면 갑자기 조용해진다. 그래서 숙소로 바로 들어가면 하루가 너무 갑작스럽게 끝나버린 느낌이 든다.

그래서 역 맞은편 상가를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다.


시나가와역 앞, 늦은 시간의 선택지

시나가와역 주변은 오피스 밀집 지역의 성격이 강해서인지 늦은 밤까지 운영하는 식당은 많지 않았다. 불이 꺼진 간판이 많았고, 이미 정리 중인 가게도 눈에 띄었다. 전날에는 이자카야를 방문했으니 오늘은 조금 다른 분위기를 찾고 싶었다.

그렇게 상가를 한 바퀴 정도 돌던 중 눈에 들어온 곳이 있었다. 간판에 적힌 이름은 ‘Del Sole’. 크지 않은 가게였지만 유독 따뜻해 보였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야외 좌석이었다. 일본에서 흔히 보는 노천 테이블이 몇 개 놓여 있었고, 그 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보였다.

잠깐 고민했지만, 결국 들어가기로 했다.


여행에서만 가능한 선택, 야외 좌석

2월 말 도쿄의 밤공기는 생각보다 포근했다. 서울이라면 망설였겠지만, 이 날씨라면 야외에 앉아 있어도 무리가 없겠다고 느껴졌다. 여행을 하다 보면 사소한 선택이 기억으로 남는다. 실내보다 야외에 앉기로 한 것도 그런 선택이었다.

테이블에 앉자 주변 풍경이 천천히 보이기 시작했다. 퇴근 후 한 잔 하러 온 직장인들,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커플, 혼자 앉아 휴대폰을 보며 맥주를 마시는 사람. 관광지의 밤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신주쿠의 네온이 ‘보여주기 위한 밤’이었다면, 이곳은 ‘살아가는 밤’ 같은 느낌이었다.

여행 중 가장 일본 같다고 느꼈던 순간은 오히려 이런 시간이었다.


간단한 맥주 한 잔

이미 저녁 식사는 했기 때문에 배는 고프지 않았다. 그래서 기린 맥주 한 잔과 간단한 안주를 주문했다. 메뉴판을 보고 대충 고른 음식이었는데, 문어와 감자를 볶은 요리였다.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맥주와 함께 먹기에는 충분히 괜찮았다.

여행 중에는 화려한 음식보다 이런 메뉴가 더 기억에 남는다. 특별히 맛있어서가 아니라, 그 순간의 공기와 함께 기억되기 때문이다. 따뜻한 조명 아래에서 맥주 거품이 천천히 사라지고, 옆 테이블의 대화가 간간이 들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지만 그 시간이 오히려 여행 같았다.

맥주를 한 잔 더 주문했다.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

둘째 잔을 마실 때쯤 오늘 하루가 머릿속에서 정리되기 시작했다. 아침의 호텔 조식, 시나가와 거리의 조용한 풍경, 대학 캠퍼스의 공기, 에비스의 분위기, 신주쿠의 인파, 가부키초의 네온사인까지.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장면을 보고 이동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았다.

여행은 이동하는 시간보다 멈춰 있는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 관광지를 보는 것은 기록이지만, 멈춰 앉아 있는 시간은 기억이 된다. 이 바에서의 시간은 일정표에는 없었지만, 오히려 이날의 마지막 장면으로 가장 또렷하게 남았다.


부담스럽지 않았던 비용, 그리고 만족감

맥주 두 잔과 안주를 포함해 약 2,600엔 정도가 나왔다. 여행지에서의 저녁 시간치고는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이었다. 가격보다 좋았던 것은 분위기였다. 관광객을 상대로 한 가게가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간에 잠시 섞여 들어간 느낌이었다.

계산을 하고 일어나니 시나가  와역 앞 거리는 더 조용해져 있었다. 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만 간간이 보였고, 대부분의 상점은 이미 불을 끄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여행 하루의 끝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생각이 들었다. 여행에서 기억나는 장소는 유명한 관광지가 아닐 때가 많다. 오히려 이렇게 일정 사이에 끼어들어온 작은 시간이 오래 남는다. 신주쿠의 화려한 밤도 인상적이었지만, 시나가와에서 보낸 이 한 시간이 더 현실적인 여행의 기억처럼 느껴졌다.

방에 들어가니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에 앉았을 때, 오늘 하루가 끝났다는 것이 비로소 실감났다. 아마 내일이 되면 또 다른 일정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날 밤만큼은, 관광객이 아니라 잠시 도쿄에서 생활한 하루에 가까웠다.

여행의 마지막은 장소가 아니라 시간으로 기억된다. 이 밤은 그날 도쿄에서의 시간을 가장 조용하게 마무리해 준 순간이었다.


📌 델 솔 (Del Sole) 시나가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