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도쿄에서의 하루는 생각보다 빨리 속도를 올렸다. 우에노에서 카메이도로 이동해 카메이도 클락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아직 여유가 있겠지” 싶었는데, 막상 이벤트존 근처에 다가가니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사람들의 걸음이 묘하게 바빠지고, 누군가는 이미 동선을 체크하듯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오늘의 무대가 이 안에서 열린다’는 사실 자체가 공간을 살짝 들뜨게 만들고 있었다. 쇼핑몰은 어디까지나 쇼핑몰인데, 공연이 끼어들면 그 순간부터 그곳은 ‘공연장처럼 행동해야 하는 곳’이 된다. 무대 앞의 바닥, 안내 표지판, 스태프의 동선, 그리고 그걸 눈치껏 따라가는 팬들의 표정까지. 이 조합이 완성되는 순간부터는, 여기가 백화점인지 공연장인지 경계가 희미해진다.
그런데 딱 그 타이밍에, 공연장 옆 꽃집에서 꽃다발을 주문하고 있던 우리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주문을 잠깐 멈추고 이벤트존 쪽으로 돌아가니, 정말로 시스 멤버들이 리허설을 위해 막 도착한 듯한 분위기였다. 촬영 금지라서 카메라를 들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집중하게 된다. 화면으로 남기지 못하니 눈으로라도 한 장면씩 저장해두려고, 괜히 숨소리까지 조심하게 되는 기분. 3주 전 긴시초에서 분명히 봤던 얼굴들인데, 연말이라는 계절감 때문인지 다시 보니 더 반갑고 더 멀리서 온 느낌이 들었다. 그날은 “어? 또 보네”에 가까웠다면, 오늘은 “그래, 결국 여기까지 왔네”라는 감정이 더 컸다. 리허설은 짧고 간결하게 끝났다. 어쩌면 본무대보다도 더 현실적인 얼굴들,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의 에너지, 서로를 확인하는 시선, 리듬을 맞추는 호흡이 그 몇 분 안에 다 들어 있었다.

리허설이 끝난 뒤, 다시 꽃다발로 돌아가며 느낀 ‘연말의 속도’
리허설을 끝까지 보고 다시 꽃집으로 돌아왔는데, 이때부터는 시간이 갑자기 빨리 감기 시작했다. 꽃다발은 생각보다 제작 시간이 걸렸고, “금방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슬슬 초조함으로 변한다. 특히 쇼핑몰 공연은 시간이 되면 스태프가 칼같이 전환을 걸어버리는 편이라서, 한 번 흐름이 꼬이면 작은 불안이 커지기 쉽다. 다행히도 현장에 함께 있던 일본인 팬의 도움 덕분에 주문 자체는 깔끔하게 진행됐다. 미리 만들어진 꽃다발을 집어 들고 끝내도 됐겠지만, ‘오늘’이라는 날짜가 주는 의미가 있으니 색 조합을 조금 더 신경 쓰게 됐다. 결과적으로는 붉은색·분홍색 계열 하나, 푸른색 계열 하나. 두 개를 받아 들고 나니, 쇼핑은 거의 안 했는데도 “그래도 오늘 카메이도 클락에서 뭔가 사긴 샀다”는 느낌이 남는다.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소비는 결국 ‘가격’이 아니라 ‘이게 왜 필요한가’라는 이유가 분명한 소비인 것 같다.

사전입장 티켓을 위해서 ‘체키’를 사는 방식, 그리고 또 한 번 실감한 가챠의 나라
이번 미니 라이브도 구조는 긴시초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연은 무료, 대신 굿즈(체키)를 구입하면 사전입장 티켓이 주어지고, 그 입장번호는 랜덤. 말 그대로 가챠 시스템이다. 체키 1장 1,000엔이라는 가격 자체는 납득 가능한 수준인데, 문제는 ‘규칙의 디테일’이 처음엔 잘 안 보인다는 것이다. 한 번에 여러 장을 사면 티켓은 한 장만 주어진다—이걸 미리 알고 있었으면, 한 장씩 끊어서 결제하고 입장번호를 여러 번 뽑아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때의 나는 아직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결과는 또 현실적이었다. 내 번호는 70번대. 같이 간 일행 중 한 명은 1번, 다른 한 명은 30번. 이쯤 되면 웃어야 한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같은 공연을 보러 왔는데, 누군가는 VIP처럼 들어가고 누군가는 사실상 일반입장처럼 들어가게 되는 구조. 그게 일본의 현장 시스템이 가진 묘한 맛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날은 체키 구매 횟수만큼 하이터치권이 추가로 붙는 방식이라, 체키는 단순히 ‘입장권’이 아니라 공연 이후까지 이어지는 ‘경험권’이 되었다. 하이터치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막상 현장에서는 그 짧은 순간이 하루의 피로를 싹 지워버리는 버튼처럼 작동한다. 그래서 다들 그 한 번을 위해 더 고민하고, 더 줄을 서고, 더 계산을 반복한다. 이해는 된다. 결국 사람은 ‘기념품’보다 ‘기억’을 더 오래 붙잡으니까.

iSPY → SIS/T, 두 팀이 이어지는 구조에서 생긴 묘한 긴장감
이날은 iSPY가 먼저, 그 다음이 SIS/T였다. 문제는 입장번호를 두 팀이 공유한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팬덤이 한 번에 몰리니, 자리는 더 빨리 차고, 분위기는 살짝 어색해진다. 누구는 앞을 바라보며 응원 준비를 하고 있고, 누구는 “빨리 끝나고 내 팀 나왔으면…” 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나도 솔직히 그랬다. 팔자에도 없던 일본 아이돌 무대를 현장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막상 보면 또 새롭다. ‘이런 분위기구나’ 싶기도 하고, 사진 촬영 타임이 열리는 방식이나 관객의 반응이 한국과는 다른 결을 갖고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그렇다고 마음이 흔들리진 않는다. 오늘의 목적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명확했으니까. 다만 iSPY가 먼저 공연을 해줬다는 점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작은 기회를 줬다. 공연이 끝나면 앞자리에 있던 일부 팬이 빠질 수 있고, 그 순간 빈틈이 생긴다. 즉, 70번대인 나 같은 사람에게도 ‘앞으로 한 칸 이동할 가능성’이 생긴다.
실제로 그 일이 벌어졌다. iSPY 공연이 끝난 뒤 앞쪽에서 몇 명이 빠졌고, 그 빈자리가 생각보다 빨리 생겼다. 그때의 심리는 되게 단순하다. “지금이다.” 괜히 눈치를 오래 보면 타이밍을 놓친다. 그래서 일행에게 먼저 앞자리로 이동하라고 신호를 주고, 나 역시도 이어서 자리를 확보했다. 완벽한 1열은 아니었지만, 처음 예상했던 ‘5열 이상’의 거리에서 ‘3열 정도’까지 당겨졌다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체감은 완전히 달라졌다. 공연은 결국 거리 싸움이다. 가까우면 표정이 보이고, 표정이 보이면 감정이 더 실감난다.

SIS/T 무대 시작, 익숙한 선곡이 만들어낸 ‘확신’ 같은 순간들
드디어 시스의 차례가 왔다. 선곡은 큰 차이가 없었다. “Dancing Queen”, “사랑의 배터리(일본어)”, “Stay with me”, “푸른 산호초”로 이어지는 흐름은 이미 익숙한데, 이상하게도 익숙함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아, 이 팀은 이 구성을 믿고 밀고 있구나”라는 확신이 생긴다. 특히 ‘연말’이라는 시즌이 주는 분위기와 ‘쇼핑몰’이라는 공간의 성격이 겹치면서, 무대는 더 축제처럼 느껴졌다. 다만 여기서 가장 큰 차이가 하나 있었다. 긴시초 타워레코드에서는 (점프만 제외하면) 분위기가 조금 더 뜨거웠는데, 카메이도 클락은 쇼핑몰 한가운데라서 그런지 ‘소리 응원 금지’가 상당히 엄격했다. 그러니까 이건 관객이 못하는 게 아니라 “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게 생각보다 답답하다. 멤버들은 계속 호응을 유도하는데, 관객은 박수 정도만 조심스럽게 낼 수 있다. 응원봉을 흔들듯 마음을 흔들고 싶은데, 그 마음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공연은 더 ‘감상’의 형태로 남는다. 뜨거운 함성 대신, 눈으로 오래 담고 귀로 더 세게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조용한 공기 안에서 멤버들의 표정이 더 또렷하게 보인다. 특히 미유와 마코토는 무대 위에서 관객을 찾는 눈빛이 분명하다. 소리가 없어도, “여기 봐줘”라는 신호는 표정과 손짓으로 다 전달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더 집중하게 된다. 소리를 낼 수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놓치지 않는 것’뿐이다.



하이터치, 짧아서 더 아쉬운 동시에 짧아서 더 강렬한 행사
공연이 끝나고 하이터치가 이어졌다. 체키로 받은 티켓을 제출하고 멤버들 앞으로 지나가며 손을 터치하는 방식. 말 그대로 하이파이브 정도의 짧은 접촉인데, 그 몇 초가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다만 이 과정에서 아쉬움도 있었다. 스태프가 지나치게 빠르게 흐름을 밀어붙이니, 한마디라도 제대로 하려고 하면 뒤에서 몸을 살짝 밀며 재촉하는 느낌이 든다. 그게 규칙이라면 이해는 하지만, 또 어떤 팬은 미유와 길게 대화를 나누고 있고, 어떤 팬은 손도 제대로 못 대고 지나가게 된다면, 그건 ‘일관성’이 흔들리는 순간이 된다. 결국 이런 행사는 공정함이 중요하다. 다 같이 짧게 하고 끝내든지, 다 같이 조금씩 여유를 주든지. 가운데에서 애매하게 흔들리면, 기분 좋은 마무리를 하러 왔다가도 찜찜함이 남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날은 작은 따뜻함이 하나 더 얹혔다. 현장에 있던 일본 팬 한 분이 내게 하이터치권을 하나 양보해줬다. 아마도 그 하이터치 과정에서 내 차례의 시간을 빼앗은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거나, 혹은 그냥 “한국에서 왔으니 한 번 더 하고 가라”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이유가 뭐든, 그 배려 덕분에 나는 한 번 더 멤버들 앞을 지나갈 수 있었다. 여행에서 가장 오래 남는 건 결국 이런 ‘장면’이다. 멋진 관광지보다도, 예쁜 사진보다도, 누군가의 작은 친절이 그날을 통째로 기억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짧아서 아쉽고, 그래서 더 또렷하게 남는 연말의 미니 라이브
미니 라이브는 항상 짧다. 그래서 늘 아쉽다. 그런데 또 그 짧음 덕분에 ‘지금 이 순간’을 더 강하게 붙잡게 된다. 큰 공연은 웅장하고 안정적이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숨소리 같은 온도를 느낄 수는 없다. 반대로 미니 라이브는 가까운 대신, 너무 빨리 끝난다. 결국 둘 중 하나가 더 좋다기보다는, 둘 다 필요하다. 큰 공연으로 세계관을 보고, 작은 공연으로 사람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번 연말에, 쇼핑몰 한가운데에서 그 ‘사람’의 온도를 다시 확인했다.
카메이도 클락에서의 시스(SIS/T) 무대는, 내게 그런 의미로 남았다. 꼬여버린 입장번호, 응원 금지라는 답답함, 하이터치의 아쉬운 운영까지, 완벽한 하루는 아니었는데도, 이상하게도 마음에는 “그래도 오길 잘했다”가 남는다. 그게 팬심의 단순함이기도 하고, 여행의 본질이기도 하다. 결국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장면을 보기 위해 움직이고, 그 장면이 실제가 되는 순간에 모든 피로를 용서해버린다. 이제 남은 건, 연말 도쿄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아보는’ 시간이다. 무대는 끝났고, 도시의 밤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 카메이도 클락(KAMEIDO CLOCK)
- 주소 : 6 Chome-31-6 Kameido, Koto City, Tokyo 136-0071, Japan
- 전화번호 : +81 3-5875-4460
- 홈페이지 : https://www.kameidoclock.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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