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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세 장으로 9이닝을 치르는 야구 보드게임 ‘해리의 만루홈런(Harry’s Grandslam)’

게임 방식은 정말 간단하다. 각자 카드 세 장을 손에 쥐고 시작한다.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가며 진행하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카드를 한 장씩 내려놓는다. 안타, 2루타, 홈런 같은 공격 카드도 있고, 삼진 아웃, 뜬공, 땅볼 같은 수비 카드도 있다. 카드를 내면 다시 한 장을 뽑아 손패를 유지한다. 이걸 9이닝 동안 반복하면 끝이다.

보드게임 나잇은 늘 대학로 다이브다이스에서 열렸다. 테이블도 익숙했고, 게임도 익숙해질 즈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이번에는 조금 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어졌다. “보드게임을 꼭 보드게임 카페에서만 해야 할까?”라는 생각 끝에, 아예 장소부터 바꿔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펼쳐진 번외편의 무대는, 성균관대학교 쪽문 근처에 있는 작은 공간, ‘라면파티’였다. 그것도 손님끼리만이 아니라, 가게 사장님까지 함께한 보드게임판이었다.

이날의 목적은 단순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장님께, 야구 보드게임 하나를 선물하고 같이 해보는 것. 그래서 꺼내 든 게임이 바로 〈Harry’s Grandslam〉, 우리말로는 ‘해리의 만루홈런’이라는 이름을 가진, 믿기 어려울 만큼 오래된 보드게임이었다.


1962년에 만들어진, 카드로 하는 야구

이 게임은 무려 1962년에 만들어졌다. 제작자 해리 옵스트(Harry Obst)는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 통역사로 일하다가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야구를 보고 완전히 빠져버렸다고 한다. 그 감동이 결국 보드게임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이 작품이다. 말 그대로, 야구 보드게임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쯤 되는 게임이다.

처음 상자를 열었을 때의 인상은 솔직했다. “이게 재밌을까?” 카드 몇 장과 다이아몬드 모양의 야구판, 그리고 손으로 돌려 점수를 표시하는 전광판. 요즘 기준으로 보면 너무 단출하고, 너무 고전적이다. 그런데 막상 테이블에 펼쳐놓고 나니, 이 게임이 왜 아직도 회자되는지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규칙은 단순한데, 흐름은 묘하게 야구다

게임 방식은 정말 간단하다. 각자 카드 세 장을 손에 쥐고 시작한다.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가며 진행하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카드를 한 장씩 내려놓는다. 안타, 2루타, 홈런 같은 공격 카드도 있고, 삼진 아웃, 뜬공, 땅볼 같은 수비 카드도 있다. 카드를 내면 다시 한 장을 뽑아 손패를 유지한다. 이걸 9이닝 동안 반복하면 끝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거의 운에 맡긴 게임처럼 보인다. 실제로 카드 운의 비중이 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막상 플레이를 해보면 단순한 운게임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공격할 때 안타 카드가 손에 많으면 괜히 기대가 커지고, 수비할 때 아웃 카드가 잘 들어오면 묘하게 안도감이 든다. 카드 몇 장으로 투수와 타자의 심리전을 흉내 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해보니, 점수판이 긴장감을 만든다

이날은 시범경기처럼 가볍게 시작했다. 원정팀이 먼저 공격을 하고, 점수판을 하나씩 돌려가며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1회부터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우리 팀 투수가 두들겨 맞기 시작했고, 3회 말이 되었을 때 스코어는 이미 7:1. 솔직히 이쯤 되니 “아, 그냥 체험 정도로 끝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 게임의 재미는 여기서부터였다. 한 이닝, 한 이닝이 지나면서 조금씩 점수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카드 한 장, 카드 한 장이 이상하게 중요해졌다. 8회 말, 점수는 8:9. 어느새 역전. 테이블 위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웃으면서 하던 게임이, 어느 순간부터는 카드 내려놓는 손이 진지해졌다.

그리고 9회 말. 마지막 공격이 끝났을 때 스코어는 9:11. 결국 역전승이었다. 카드로 하는 야구게임에서, 이런 흐름이 나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대타와 계투 카드가 만드는 작은 변수

이 게임에는 특수 카드도 있다. 릴리프 피처(Relief Pitcher)핀치 히터(Pinch Hitter) 카드다. 사용법도 재미있다. 카드 더미에서 한 장을 몰래 뽑아 바닥에 놓고, 그 위에 특수 카드를 덮어둔다. 그리고 정말 “여기다” 싶은 순간에 그 숨겨둔 카드를 공개한다. 말 그대로 대타 기용, 계투 투입이다.

이 작은 장치 하나가 게임에 은근한 변수를 만들어준다. 완전히 운에 맡긴 느낌이 아니라, “지금 쓰느냐, 아끼느냐”를 고민하게 만드는 여지가 생긴다. 덕분에 게임은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한다.


오래된 설명서에서 느껴지는 묘한 정서

게임이 끝난 뒤, 설명서를 다시 펼쳐봤다. 종이 질감부터 그림체까지, 딱 1962년의 공기가 묻어 있었다. 3명이서 즐기는 방법도 적혀 있었는데, 지금 기준으로 보면 웃음이 나오는 방식이다. 둘이 게임을 하고, 한 명은 스코어보드를 관리하라는 식이다. 그리고 진 사람이 다음 판에서 스코어 담당으로 빠진다. 지금이라면 절대 나오지 않을 친절함(?)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투박함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이 게임이 만들어졌던 시대와, 그 시절 사람들이 야구를 즐기던 방식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단순하지만, 해보면 남는 게임

솔직히 말하면, 이 게임은 전략 게임은 아니다. 깊은 수읽기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한 번 해보면 기억에 남는다. 카드 몇 장으로 9이닝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점수판 하나로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그리고 게임이 끝나면, “의외로 재밌었다”라는 말이 나온다.

보드게임 나잇의 번외편으로 꺼내기 딱 좋은 게임. 그리고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설명 없이도 바로 공감대를 만들 수 있는 게임.

1962년에 이런 게임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다.


🚩 보드게임 〈해리의 만루홈런(Harry’s Grandslam)〉

  • 플레이 인원 : 2인 (변형 규칙으로 3인 플레이 가능)
  • 플레이 타임 : 약 20~30분
  • 장르 : 스포츠 / 카드게임 / 운 요소 중심
  • 특징 : 카드로 구현한 야구 경기, 실제 이닝 흐름 재현, 단순하지만 의외로 박진감 있는 전개